서먹해진 美정계-재계 “親기업정책은 끝났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9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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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대선 앞두고 갈등 깊어져… ‘기업가 정치인’ 속속 등돌려

“미국 재계와 정부의 관계가 이토록 나쁜 상황은 처음이다.”

제너럴일렉트릭(GE)을 10여 년째 이끌고 있는 제프리 이멀트 회장은 올해 봄 주주들에게 보낸 서한에서 이같이 밝혔다. 7월 한 인터뷰에서는 “워싱턴에 최고경영자(CEO) 100명을 보내 (친기업적) 정책을 밀어보자는 생각은 웃기는 소리”라고 자조적으로 말했다.

5일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미국 재계는 최근 그의 발언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 이멀트는 2009년 버락 오바마 행정부 초기에 대통령 경제회복자문단으로서 금융위기로 무너진 경제를 재건하는 정책의 큰 틀을 만든 핵심 인물이다. 2011년 그가 오바마 대통령의 외부 경제자문단 회장으로 지명됐을 때 시장에서는 “정부가 더욱 친기업적 정책을 펼칠 것이란 강한 신호”라는 해석이 나왔다.

2012년 대선까지만 해도 미 상공회의소는 표심의 중심에 있었다. 2014년 의회 선거 당시 상공회의소는 공화당에 힘을 실어줬다. 선거 기간에 지지한 후보 268명 중 민주당은 6명뿐이었다. 당시 상공회의소 지도부는 “미치 매코널을 미 상원의 리더로 만드는 게 우리 상공회의소의 1순위 과제”라고 선언했고, 뜻을 이뤘다.

하지만 11월 8일 대선을 두 달여 앞둔 현재 재계와 정계 간의 골은 깊다. 특히 이멀트처럼 정부 경제정책의 전문성을 높이며 친기업 정책을 이끈 이른바 ‘기업가 정치인’들이 잇달아 정계를 외면하고 있다. WP는 “미국 대기업들이 한때 강력한 발언권을 행사했던 워싱턴을 상당 부분 포기해 버렸다”고 보도했다. 전직 공화당 하원 지도부 출신으로 현재 기업 로비 활동을 하고 있는 빈 웨버는 “공화당이든 민주당이든 대기업과 협력하길 원하는지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2010년 정부 재정 적자를 감축하기 위해 설립된 ‘심프슨볼스위원회’에서 정부 재정을 개선하기 위해 힘썼던 데이비드 코티 허니웰 CEO는 “의회가 (기업과 협력할) 준비가 안 돼 있는데 정계에 노력해 봐야 소용이 없다”고 전했다.

정치권 역시 재계에 냉담하다. 금융권 출신으로 빌 클린턴 행정부에서 상무장관을 맡았던 윌리엄 데일리는 “솔직히 말하면 이제 선거에서 대기업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돌직구를 날렸다. 대선전에서 소수의 거부(巨富)가 거액의 정치자금을 뿌려대는 바람에 대기업의 재정적 지원이 빛을 발하지 못하는 상황을 반영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렇게 된 원인이 양쪽 모두에 있다고 분석한다. 기업들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영 여건이 팍팍해지자 국가적으로 필요한 정책에 협력하기보다 이익 내기에 급급했다.

대기업에 적대적인 대선 후보들의 행보도 재계의 불만을 사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는 최근 경제자문단을 부동산과 금융계 거물 중심으로 꾸려 집권하면 제조업보다 부동산 및 금융계의 이익을 대변하는 정책이 쏟아져 나올 것이라는 전망을 낳았다. 민주당에서는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매사추세츠)과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버몬트)이 대기업을 탐욕스러운 약탈자로 연일 비판하면서 재계의 자존심에 상처를 줬다.

조은아 기자 achim@donga.com
#정계#재계#미국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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