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서방 기업 속속 귀환… 한국엔 위기이자 기회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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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제재 풀린 이란을 가다]

지금 테헤란은 ‘주택 리모델링’ 열풍



23일 이란 테헤란의 국제박람회장에서 열린 가구·인테리어 박람회에서 해외 바이어들이 이란 기업들과 상담하고 있다. 제재 해제 이후 해외 기업인이 몰려오면서 국제박람회장은 이란 내에서 외국인을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곳이 됐다. 테헤란=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지금 테헤란은 ‘주택 리모델링’ 열풍 23일 이란 테헤란의 국제박람회장에서 열린 가구·인테리어 박람회에서 해외 바이어들이 이란 기업들과 상담하고 있다. 제재 해제 이후 해외 기업인이 몰려오면서 국제박람회장은 이란 내에서 외국인을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곳이 됐다. 테헤란=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테헤란=전승훈 특파원
테헤란=전승훈 특파원
23일 오전 이란 수도 테헤란 북부에 있는 국제박람회장.

요즘 이곳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기계, 가전, 디자인 등 각종 산업박람회가 열리고 있다. 기자가 찾은 이날도 5개의 전시장에서 가구·인테리어 박람회가 열리고 있었다. 이란 경제의 앞날을 낙관하는 외국 기업인들이 경쟁적으로 시장 문을 두드리고 있는 것이다.

이란 기업인뿐 아니라 독일, 이탈리아, 중국 등에서 온 기업인들을 쉽게 볼 수 있었다. 독일의 산업용 플라스틱(PVC) 제조회사 레놀리트사(社)의 마크 맥도나 중동담당 세일즈 디렉터는 “오랜 제재를 겪은 이란에서 요즘 주택 ‘리모델링’ 수요가 급격히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이란의 산업용 포장기계 생산회사 ‘자린파르스’의 모흐센 알리모하마디 부회장은 “이란 소비자들은 그동안 어쩔 수 없이 값싼 물건을 살 수밖에 없었지만 이제는 새로 들어오는 유럽의 질 좋은 제품에 열광하고 있다”며 “한국산, 중국산 제품도 특A급이 아니면 유럽산과 경쟁이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KOTRA가 테헤란에 문을 연 코리아비즈니스센터에서 만난 한국 기업인들은 이란 경제 제재 해제는 한국 기업에 기회인 동시에 위기라고 입을 모았다. 대(對)이란 경제 제재로 서방 기업들이 철수한 사이 한국 회사들이 가전과 자동차 등에서 독점 지위를 누려 왔는데 제재 해제로 미국 유럽 등 글로벌 기업들과 ‘무한경쟁’을 벌여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삼성전자, LG전자는 이란 가전시장의 70%를 차지하고 있고, 이란의 수입 상대국 순위에서도 한국은 중국과 아랍에미리트(UAE)에 이어 3위다. 김승욱 KOTRA 테헤란무역관장(50)은 “1970년대 중동 붐 당시처럼 이번에도 한국 기업들이 (이란에 대한) 선도적 투자로 글로벌 경쟁에서 이겨낼 것”이라고 말했다.

이란은 오랜 경제 제재에도 불구하고 2차산업이 경제의 35%를 차지할 정도로 제조업 기반이 탄탄하다. 천연자원도 풍부해 석유(매장량 세계 4위)와 가스(1위)뿐만 아니라 아연과 철광석 매장량도 세계 10위권이다.

국립 테헤란대에서 만난 포아드 이자디 교수(국제관계학)는 “이란은 8000만 명의 인구 대국이면서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등 인접국에 살고 있는 3억 명 소비시장의 물류 중심지”라며 “한국이 기술 합작 투자를 통해 이란을 중동의 생산과 유통 기지로 만드는 장기적 프로젝트에 동참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중국 역시 이란 경제에 이해관계가 깊다. 중국은 이란의 첫 번째 교역 파트너로 2014년 양국의 교역 규모는 520억 달러(약 62조3480억 원)에 이른다. 중국은 또 서방의 제재 기간 동안 테헤란 지하철 공사를 맡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16일 서방의 대이란 제재가 해제된 후 외국 정상으로는 처음 이란을 방문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에너지, 사회간접자본 분야에 대한 막대한 투자를 약속했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시 주석은 23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 최고지도자와 만난 자리에서 “양국의 오랜 역사적 교류로 일대일로(一帶一路·21세기 육상과 해양 실크로드 프로젝트) 건설에서 ‘천연(天然)의 동반자’”라고 말했다. 이에 하메네이는 “일대일로는 시의 적절한 것으로 이란은 중요 국가가 될 것”이라고 화답했다.

이란과 중국이 밀월 관계를 이어가고 있지만 이를 바라보는 이란 기업인들의 눈길이 곱지만은 않다. 중국이 자국의 자재와 노동력, 값싼 물건을 통째로 들여와 이란의 자체 제조업 시장과 청년 일자리 기반을 붕괴시켰기 때문이다. 테헤란대 공대 1학년 후세인 씨(19)는 “경제 제재 해제로 서방 기업들의 상품들이 몰려와 이란 기업이 다 죽는다면 청년 일자리는 오히려 더 나빠질 것”이라며 “한국 등 글로벌 기업들이 합작 투자로 이란의 제조업과 ‘윈윈’하는 전략을 펴 달라”고 주문했다.

이란에는 30세 미만 인구가 인구의 70%를 차지할 정도로 젊은 노동력이 풍부하다. 청년들의 대학 진학률은 70%가 넘고, 높은 기술력을 갖춘 해외 유학파도 많다. 대졸 월 초임이 평균 500∼600달러로 인건비도 싼 편이다. 이 때문에 일부 한국 기업 중에는 “중국이나 베트남에 몰려 있는 생산 공장 일부를 이란으로 옮겨 중동 공략을 위한 전략생산 기지로 활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안득수 LG전자 이란지사장은 “제재 해제 후 수요 증가에 대비해 카즈빈 등에 있는 생산 공장 시설을 확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란 현지 전문가들은 경제 제재 후 가장 큰 수혜를 보게 될 나라로 중국과 독일, 프랑스 등의 유럽 국가를 꼽았다. 김승호 주이란 대사는 “이란에 대한 리스크가 모두 사라지길 기다린다면 이미 늦을 것”이라며 “2006년부터 중단된 한-이란경제공동위원회(장관급 회담)를 2월에 재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테헤란=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이란#경제 제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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