佛 유대인 “이스라엘로 돌아갈래”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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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8000명 ‘逆엑소더스’… 왜

프랑스 파리 교외의 중산층 거주 지역에 살던 컴퓨터 전문가 아베카시스 씨(32)는 익숙한 프랑스 생활을 접고 지난해 말 이스라엘로 이주했다. 유대인인 그는 2012년 아들 노아가 태어나기 전에는 프랑스를 떠날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아이가 태어날 무렵 툴루즈에 있는 유대인 학교에서 총기 난사 사건이 벌어져 학생과 교사 4명이 숨졌다. 그 후로 유대인 학교 앞에는 무장 경찰이 삼엄한 경계를 펴고 있다. 그는 “아이가 마음 놓고 학교에 다니고, 이방인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 곳에서 살고 싶다”고 말했다.

프랑스는 유럽에서 유대인이 가장 많이 사는 곳이다. 50만 명쯤 거주한다. 그런데 이 중 20만 명이 유대인의 이스라엘 이주를 뜻하는 ‘알리야’를 꿈꾼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왔다. 유대인기구(JA)에 따르면 지난해 알리야를 실행한 서유럽 거주 유대인은 9880명이며 이 중 8000명이 프랑스 거주 유대인이었다.

왜 프랑스에서 이스라엘로 역(逆)엑소더스를 하는 걸까. 우선 지난해 1월 시사풍자 잡지 ‘샤를리 에브도’와 유대인 슈퍼마켓 테러 사건, 11월 파리 테러 사건 등이 가장 큰 요인으로 꼽힌다. 최근에는 마르세유에서 터키 쿠르드족 출신 15세 소년이 유대인 학교 교사에게 칼을 휘두르는 등 반(反)유대인 정서도 짙어지고 있다. 프랑스에서 유대인 인구 비중은 1% 미만이지만 지난해 발생한 모든 인종주의 증오 공격의 절반 이상이 유대인을 겨냥한 것이었다. 지난해 유튜브에는 반유대인 정서를 생생히 보여주는 영상이 올라왔다. 유대인 뉴스매체 NRG의 기자가 유대인들이 애용하는 ‘키파(모자)’를 쓰고 파리 곳곳을 걷는 영상이었다. 몰래카메라로 찍은 동영상에는 기자에게 “개”라고 부르거나 침을 뱉고, “팔레스타인 만세”를 외치는 사람도 있었다. “유대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공격당하거나 위협당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프랑스 거주 유대인 비율이 60%라는 여론조사도 있다.

이슬람 극단주의를 막기 위해 프랑스 정부가 내세우는 엄격한 정교(政敎)분리 원칙도 종교 생활을 중시하는 유대인들을 떠나게 하는 요인이다. 반대로 2008년 건국 60주년을 맞은 이스라엘 정부는 귀국 유대인들에게 10년간 해외에서 취득한 모든 자산과 소득에 면세 혜택을 주면서 이들을 환대하고 있다.

알리야를 꿈꾸는 유대인들은 대부분 고학력 중상류층이고 금융과 경제에 영향력을 가진 기업인이 많아 프랑스 정부의 고민이 깊다. 다니엘 벤하임 유대인기구 프랑스지부장은 “유대인 이주자들 중 다수는 비싼 세금과 반유대주의 분위기를 피하려는 중산층과 부유층”이라며 “하위층 유대인들은 프랑스의 관대한 사회복지 혜택 때문에 떠나지 않는다”고 전했다.

마뉘엘 발스 프랑스 총리는 지난해 테러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유대인은 프랑스 공화국의 전위대”라고 강조했지만 유대인의 탈출 행렬을 막지 못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경제장관도 지난해 9월 이스라엘을 방문해 유대인들에게 프랑스로 돌아오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당시 간담회에 참석했던 청년 창업자 제레미 브라베 씨(32)는 “프랑스에서 유대인으로 살면서 아무도 내게 볼을 패스하지 않는 축구팀에 있는 느낌을 받았다”며 “프랑스는 휴가 때만 갈 것”이라고 말했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프랑스#유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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