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직 늘어난 伊… ‘데몰리션 맨’의 개혁, 일자리 만들다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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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개혁 입법 1년만에 성과… 노조 달걀세례에도 의회 설득
기업의 근로자 해고기준 완화하고 세제혜택-인센티브로 고용 유도
상반기 정규직 일자리 25만개 증가

‘이탈리아의 40세 개혁의 기수’로 불리는 마테오 렌치 총리(사진)가 1년간 추진해 온 노동개혁이 결실을 보고 있다.

렌치 총리는 노조의 반대를 무릅쓰고 정규직 보호를 완화하는 개혁을 추진했는데 올 상반기 정규직 고용비율은 오히려 늘었다. 이탈리아 국립사회보장연구소(INPS)는 10일 “올해 상반기 새로 고용된 전체 근로자 중에서 정규직이 차지하는 비중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7.2%포인트 늘었다”며 “정규직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5만2000여 명 늘어나고 비정규직 고용은 줄었다”고 발표했다. 구체적으로 새로 정규직 일자리를 얻은 사람은 95만2000명이고, 비정규직에서 정규직으로 전환한 근로자는 33만1000명이다.

10일 렌치 총리는 “정규직 계약 비율이 늘어났다는 통계는 일자리 법안의 가치를 증명하는 것”이라며 “25세 미만의 청년 실업률이 42%에 이르고, 저임금과 불안정에 시달리는 비정규직 계약이 대부분인 현실과의 싸움에서 우리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했다.

이탈리아 개혁의 상징으로 ‘데몰리션 맨(파괴자)’이라는 별명까지 갖고 있는 렌치 총리는 지난해 2월 취임 후 정치·행정 시스템 개혁과 노동개혁에 공을 들여 왔다. 올 3월부터 시행된 ‘일자리 법안(Job Act)’이 대표적이다. 노조로부터 여러 차례 달걀 세례까지 받을 정도로 궁지에 몰렸지만 상하원을 끈질기게 설득해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탈리아는 그동안 1970년대 도입된 노동법에 따라 15명 이상을 고용한 기업주는 ‘정당한 사유’ 없이 근로자를 해고할 수 없었다. 한 번 정규직으로 취업하면 평생 고용을 보장받는 시스템이다. 이 때문에 비용 부담을 우려한 기업들이 정규직 고용을 꺼리고 비정규직을 주로 뽑았었다.

하지만 3월부터 시행된 ‘일자리 법안’에 따라 근로자를 ‘경영상의 이유’로 해고하는 길이 열리게 된 것. 법원에서 불법 해고라는 판결이 나오면 해고 근로자에게 보상금을 줘야 한다는 단서가 있지만 다시 일자리로 복귀시켜야 할 의무는 없다. 대신 정부는 정규직을 고용하는 회사에 대해 다양한 세제 혜택과 인센티브를 제공해 비정규직 계약을 줄여 나가도록 했다.

제도가 시행되자 활기를 띤 것은 기업이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고급 스포츠카 업체인 람보르기니는 볼로냐 지역에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생산 공장을 짓기로 하는 등 기업 유인 효과가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보도했다.

유로존 3위의 경제 대국이면서도 장기간 침체에 빠졌던 이탈리아의 경기회복세도 최근 뚜렷해졌다. 렌치 총리는 “특허 등록 건수가 5년 만에 처음으로 2.8% 증가한 것은 수년간의 침체에서 벗어났다는 의미”라고 덧붙였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최근 “이탈리아의 국내총생산(GDP)이 올해 0.6% 증가하고, 내년에는 1.5%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자리 법안’은 이제 민간을 넘어 공공부문이나 기존의 정규직 노동자들까지 확대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기업경영자협회(CONFINDUSTRIA)는 “경제 활성화를 위해 일자리 법안을 공공부문까지 도입하고, 기존의 노동자들도 적용받아야 한다”고 촉구했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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