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인 적대시하면 경제성장 어려워”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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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되살아난 佛경제]
정책변화 출발점 ‘갈루아 보고서’ 쓴 루이 갈루아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

좌파 프랑수아 올랑드 정부가 친(親)기업 정책으로 노선을 바꾼 결정적 보고서가 있으니 바로 ‘갈루아 보고서’이다. 증세 철폐와 규제 완화를 강력하게 주문하는 내용인 이 보고서를 쓴 사람은 루이 갈루아 프랑스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75·사진)으로 현재 푸조 시트로엥(PSA) 이사회 회장이기도 하다. 파리 샹젤리제 거리에 있는 사무실에서 최근 그를 만났다.

머리카락이 없어 ‘수도승’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그의 사무실은 작고 소박했다. 재무관료 출신인 그는 기업 최고경영자(CEO)로 변신해 탁월한 경영수완을 발휘한 것으로 유명하다. 적자에 시달리던 국영철도회사(SNCF)를 10년간 맡아 흑자로 전환시켰고 역시 적자에 허덕이던 항공·우주 전문기업 ‘에어버스’를 세계 항공기 시장 수주 1위 기업으로 키웠다. 3년간 적자에 허덕이며 공장 폐쇄와 직원 8000명 감원을 겪었던 푸조 시트로엥(PSA)도 취임 1년 만에 흑자로 돌려놓았다.

“비결이 뭔가”라고 묻자 그는 지금 일하고 있는 푸조에 처음 왔을 때 이야기부터 꺼냈다. “문제가 한두 개가 아니었다. 중국 둥펑자동차와 프랑스 정부가 주식 지분을 인수하며 자금수혈을 하고 전임 CEO도 동분서주했지만 회사 정상화는 쉽지 않았다. 그동안 내가 맡았던 기업들은 대부분 프랑스를 대표하는 브랜드이며 이미 훌륭한 역량을 갖춘 직원들이 일하고 있는 기업이었다. 푸조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직원들이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해 자신들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경영자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지난해 이 회사가 적자에서 흑자로 돌아선 것도 가격 절감, 재고 관리 개선 등에 따른 것이었지만 직원들이 자신의 능력을 다 쏟아 부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2012년 국가경쟁력강화위원장 겸 투자자문각료회의 상임고문으로 임명된 후 ‘갈루아 보고서’를 낸 배경을 물었다. “프랑스 산업이 과연 얼마나 국제경쟁력을 갖고 있는지 정면으로 묻고 싶었다. 지금까지 프랑스 정부가 산업 경쟁력 문제를 진지하게 논의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부(富)를 만들어내는 것은 기업인임에도 불구하고 기업인에 대한 적대감이 컸다. 이래서는 프랑스가 일어설 수 없다는 게 보고서의 핵심이다. 정부가 기업을 지원해야 하는 이유는 고용주를 위한 것이 아니라 국가의 부를 창조하기 위해서이다.”

―기업지원책의 핵심은 뭔가.

“‘규제의 단순화’이다. 규제가 복잡하면 그만큼 이익 집단이 개입할 여지가 크다. 이 대목에서 한 가지 짚고 싶은 게 있다. 흔히 규제 철폐라고 하면 이를 위한 또 다른 법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기존 법에서 생각만 유연하게 가지면 단순화할 수 있다. 사람들은 프랑스가 현재와 같은 수준의 노동법이 있는 한 어떤 개혁도 못한다고들 하는데 그렇지 않다. 예를 들어 지난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장 티롤 교수가 제안한 ‘단일 계약’ 제도는 처음엔 단기 비정규직(CDD)으로 고용 계약을 했다가 경력이 늘어나면서 장기 계약(CDI)으로 발전시켜 나가는 방법이다.”

―현재 법으로 정해져 있는 ‘주 35시간 노동시간’도 너무 짧다고 주장해 왔는데….

“실제로 일하는 프랑스 근로자들의 평균 노동시간은 주 38시간이어서 현실과 맞지 않다. 하지만 개혁에도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 나는 2000년부터 줄곧 ‘주 35시간 노동제’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지만 이건 일종의 금기를 건드리는 심각한 사회적 분열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

―프랑스의 미래를 어떻게 보나.

“비관적이지 않다. 디지털 기업들이 크고 있고 창업과 특허 신청 건수가 크게 늘고 있다. 산업 경쟁력은 1, 2년 안에 효과가 나지 않는다. 독일도 슈뢰더 정부가 한 노동시장 개혁조치가 효과를 내기까지 10년에 걸친 노력이 있었다. 어떻든 정부의 구조개혁 덕분에 기업들의 이윤이 점차 좋아지고 있다. 기업들은 그동안의 비관적 자세에서 벗어나 좀 더 투자에 대한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가족수당과 주택수당 감소도 추진하고 있다.

“무작정 줄이자는 것은 아니다. 형편이 나은 중산층 지원은 줄이되 지원이 필요한 저소득층에 대한 예산은 늘리는 방향으로 하고 있다. 가족수당 감소도 매우 신중하게 다루어야 한다. 출산율이 떨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산업 경쟁력을 위해서는 인구의 역동성을 유지해야 한다. 프랑스는 더 이상 낭만주의 문화국가가 아니다. 항공우주, 원자력, 바이오 테크, 디지털 강국으로 변신한 지 오래이다. 요즘 젊은이들의 스타트업(창업) 열풍도 뜨겁다. 프랑스의 신생 기업에서 많은 한국 젊은이들이 일할 수 있기를 바란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갈루아#보고서#경제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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