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멕시코 유명 방송진행자 해고에 “존중” “정치보복” 대조, 왜?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26일 15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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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서양을 사이에 둔 영국과 멕시코에서 유명 방송진행자 해고 문제를 둘러싸고 논란이 불거졌지만 ‘정치적 외압’과 관련해선 묘한 대조를 보이고 있다.

영국 공영방송 BBC는 25일 자사의 최고 인기프로그램 ‘탑 기어’의 진행자 제레미 클라크슨(55)을 최종 해고하겠다고 밝혔다. 토니 홀 BBC사장은 이날 신중히 고민했지만 클라크슨이 “넘지 말아야할 선을 넘었다”면서 “유감스럽게도 오늘 클라크슨과 재계약하지 않기로 했다는 뜻을 밝혔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영국 경찰은 BBC의 조사보고서를 넘겨받아 폭행혐의 조사에 착수했다.

클라크슨은 2002년부터 자동차 쇼 프로인 ‘탑 기어’를 진행하며 전 세계 170여 개 국 3억5000명이 시청하는 인기 프로그램으로 탈바꿈시킨 주역이다. 자동차에 대한 해박한 지식만큼 자동차를 좋아하는 ‘마초남’의 이미지가 한몫을 했다. 하지만 그만큼 인종차별적 발언과 애국주의적 언사로 공영방송 BBC의 점잖은 이미지와 충돌해왔다. 지난해 흑인에 대한 비하 발언으로 마지막 경고를 받았던 그는 최근 탑 기어 촬영이 끝난 뒤 따뜻한 음식을 준비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담당 프로듀서에게 언어적 육체적 폭력을 가해 15일 방송 분부터 출연정지 처분을 받은 끝에 끝내 해고된 것이다.

BBC의 결정은 경제적 정치적 부담에도 불구하고 원칙을 견지한 것이었다. 탑 기어는 프로그램 판매로만 연간 3억5000만 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게다가 그 간판스타인 클라크슨은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의 친구다. 캐머런 총리는 폭행사건이 불거진 뒤 “클라크슨의 재능이 아깝다”며 그의 방송 복귀를 지지하고 나섰다. 하지만 그는 BBC의 결정을 전달받은 뒤 “직장에서 공격적이고 직권 남용적 행동은 용남될 수 없는 것”이라며 이를 존중했다.

반면 멕시코 민영방송사인 MVS 라디오는 15일 간판 뉴스진행자인 카르멘 아리스테기(51)를 해고했다가 정치적 외압에 굴복한 것이라는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멕시코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저널리스트’로 불리는 아리스테기는 지난해 엔리케 페냐 니에토 대통령의 부인인 앙헬리카 리베라 여사가 ‘카사블랑카’로 불린 호화 주택을 부정 취득한 의혹을 파헤친 탐사보도로 명성을 재확인했다. 건설업체로부터 빌린 돈으로 카사블랑카를 구입했는데, 이 업체가 멕시코시티와 산업도시인 케레타로를 잇는 고속철 사업자로 선정된 중국기업 중심의 컨소시엄에 참여한 기업의 계열사라는 사실을 폭로한 것이다. 보도가 나간 뒤 멕시코 정부는 중국 컨소시엄 계약을 일방적으로 철회했고 중국으로부터 공식 항의를 받기에 이르렀다.

MVS 라디오는 이런 특종을 보도한 아리스테기 뉴스팀의 기자 2명을 최근 해고했다. 이들이 권력형 부패사건을 파헤치는 ‘멕시코 리크스’라는 독립 언론단체에 참여하면서 허락 없이 회사 로고를 노출했다는 이유였다. 아리스테기는 13일 방송에서 이들을 원상 복귀시키지 않으면 자신도 그만두겠다는 뜻을 전했고 16일 해고 통고를 받았다.

멕시코에선 그의 해고가 정치보복이라며 이에 항의하는 소녈네티워크(SNS) 해쉬태크 운동이 펼쳐지고 있다. ‘아리스테기를 지키자’는 뜻의 스페인어 해시태크(#EndefensadeAristegui)는 벌써 100만 건을 돌파했고 ‘멕시코는 아리스테기가 돌아오길 원한다’ 는 영어 해쉬태크(#MexicoWantsAristeguiBack)는 25만 건이 넘어섰다. 일부 방송 인사들은 MVS라디오 출연을 거부하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아리스테기는 4년 전에도 MVS라디오에서 한 번 해고됐다고 복직된 전력이 있다. 그는 2011년 펠리페 칼데론 전 대통령 시절 “대통령이 알코올 중독 상태라는 얘기에 대해 정부가 해명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가 사과방송을 거부해 해고됐으나 청취자들의 비난 여론이 빗발치자 2주 만에 복직됐다.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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