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박형준]시오노 나나미의 비뚤어진 위안부 인식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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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준·도쿄 특파원
박형준·도쿄 특파원
일본의 보수 월간지인 분게이슌주(文藝春秋) 10월호에 실린 여성 작가 시오노 나나미(鹽野七生·77) 씨의 기고문 ‘아사히신문의 고백을 넘어’를 읽으면서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그는 베스트셀러였던 ‘로마인 이야기’의 작가로 평소 정치적 발언을 거의 하지 않았다. 그런 그가 일본군 위안부 관련 아사히신문의 오보를 공격하는 극우세력과 같은 주장을 펼쳤다.

그는 아사히신문이 일본인 요시다 세이지(吉田淸治·사망) 씨의 주장을 다룬 기사들을 모두 취소한다고 밝힌 점을 강조했다. 요시다 씨는 ‘제주도에서 다수 여성을 강제로 끌고 갔다’고 증언했었다. 시오노 씨는 “아사히의 고백은 대처하기에 따라 절호의 찬스가 될 수 있다. 무엇보다 일본에 대한 외국의 (나쁜) 인상을 회복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아사히신문의 위안부 특집기사 중 ‘인도네시아에서 현지의 네덜란드인을 강제로(無理やり) 연행해 위안부로 삼았다’는 부분에서 “머릿속에 위험신호가 깜빡이기 시작했다. 미국과 유럽이 위안부 문제로 (일본을) 공격한다면 바로 이 부분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미국과 유럽을 적으로 돌리는 것은 현명하지 못한 일이며 네덜란드 여자도 위안부로 삼았다는 등의 이야기가 퍼지면 큰일이다. 그전에 급히 손을 쓸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시오노 씨는 네덜란드 여성의 강제연행에는 민감했지만 한국인 위안부에는 아무런 문제를 느끼지 못했다. ‘강제성’이 있었을 뿐 ‘강제연행’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유능한 변호사라면 두 단어의 차이를 바로 알 수 있다. (위안부 동원에 강제성이 있다는 것은) 여성의 가슴속에 어떤 사연이 있든지 간에 자기 발로 (위안소로) 갔다는 것이다”라고 주장했다. 이는 “강제연행 증거가 없다”는 극우세력의 논리를 옹호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본인의 의사에 반해 위안부가 된 것’을 자발적 행동으로 보기 때문이다.

아사히신문이 위안부 할머니들의 구술을 비중 있게 보도한 것도 문제 삼았다. “대상에 다가가 따뜻한 감정을 가지는 것과 동시에 객관적 시선을 가지지 않으면 언론의 자격이 없다”며 아사히신문을 비판했다. 위안부 할머니들의 진술은 믿을 수 없는 거짓말이라는 말인가.

시오노 씨의 기고문을 보면 일본의 상당수 지도층이 과거를 직시하기보다 현재의 국제적 평판에만 매달린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게다가 문화계 인사까지 나서 ‘오른쪽’의 일방적인 주장을 펼칠 정도로 ‘다른 쪽’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이렇게 일본 사회가 한쪽으로 쏠리는 현상은 제2차 세계대전 직전에도 나타났었다.

박형준·도쿄 특파원 lovesong@donga.com
#시오노 나나미#위안부#로마인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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