軍 발포로 43명 사망… 최악 치닫는 이집트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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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의 카이로 김영식기자 3信]

이집트 군부가 8일 오전 3시 30분경 카이로에서 무함마드 무르시 전 대통령 지지 시위대에 총격을 가해 최소 43명이 숨지고 500여 명이 다쳤다. 8일 발생한 사상자 가운데에는 여성과 아이들도 포함됐으며, 사망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뉴욕타임스(NYT)와 알자지라방송 등이 보도했다. 부상자들은 일 데민 일사히르(의료보험)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다.

김영식 기자
김영식 기자
군부의 총격 직후 이 병원에 나와 환자를 치료하고 있던 할레드 엘사즐니 씨(39)는 “300여 명의 부상자 중 머리나 배, 심장 부위에 총탄을 맞은 30여 명은 위독한 상태”라며 “60여 명도 팔과 다리를 절단해야 하는 등 심각한 후유증이 걱정된다”고 말했다.

병원에서 만난 사이드 압딜메디 씨는 “새벽에 광장에서 엎드려 기도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총성이 울려 뒤를 돌아봤더니, 형이 총탄에 맞아 피를 흘리고 있었다”며 당시 총격 상황을 전했다. 그는 “이맘(이슬람 지도자)이 마이크를 잡고 ‘여기에 평화가 온다’고 말하고 있을 때 갑자기 총탄에 맞아 그 자리에서 숨졌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7일 무르시 지지파와 반대파의 대규모 집회가 별다른 충돌 없이 끝나는 시점에 일어난 군의 작전으로 이집트 정국은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무슬림형제단(MB)은 이번 군사 작전을 ‘대학살’로 규정했다. 극단주의자들이 모인 알누르당은 즉각 임시정부 협상 과정에서 탈퇴한다고 선언해 이집트 군이 밝혔던 정치적 로드맵 이행에도 차질이 예상된다.

게하드 하다드 무슬림형제단 대변인은 “군과 경찰이 카이로의 공화국수비대 사령부 앞에 앉아 있던 시위대를 향해 최루탄과 총탄을 발포했다”고 말했다. 공화국수비대에는 축출된 무르시 전 대통령이 감금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이번 유혈 진압은 시위자를 겨냥한 범죄 행위”라고 주장했다. 한 목격자는 “총탄을 난사한 부대는 군이 아니라 무바라크가 되돌아온 것과 같았다”고 말했다고 알자지라방송이 전했다.

그러나 이집트 군은 “테러리스트가 공화국수비대 시설에 침입하려고 했다”며 “군 장교 한 명도 사망했다”고 밝혔다.

이번 진압 작전 이후 군은 무르시 지지자들이 시내 중심부로 가는 길목인 10월 6일 다리와 국영방송국 앞에 장갑차와 탱크를 추가로 배치하고 교통을 통제하는 등 경계를 강화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이집트 사태를 두고 무르시파 대 반무르시파 간 내전의 위험이 있다고 주장했다. AFP통신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7일 “시리아가 이미 내전에 휩싸였고 슬프게도 이집트 또한 같은 길을 걷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신화통신은 “이슬람 군부는 지금까지 서로 다른 세력 간의 충돌을 잘 통제해 왔다”며 “지금의 혼돈 상태는 곧 가라앉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 이집트 임시정부는 신임 총리 논란을 벌였던 무함마드 엘바라데이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 대신 변호사 출신인 지아드 바하 엘딘을 총리에 임명하기로 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흐마드 알무슬리마니 이집트 대통령실 대변인은 7일 현지 TV에 출연해 “중도좌파 성향의 엘딘이 신임 총리로 지명될 가능성이 높다”며 “엘바라데이는 부통령을 맡을 것”이라고 밝혔다고 BBC가 전했다. 런던정경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엘딘은 미국 워싱턴 로펌에서도 활동했으며 2011년 아랍의 봄 이후 정계에 진출했다. 알누르당도 신임 총리에 반대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여전히 이집트 상황에 대한 대응 방향을 정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 공화당 중진 존 매케인 상원의원(애리조나 주)은 이집트 군부가 무르시 전 대통령을 몰아낸 것을 ‘쿠데타’로 규정했다. 그는 7일 CBS 방송에 출연해 “이집트에 대한 원조는 민주 정부로 전환되는 것을 전제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로버트 메넨데즈 상원외교위원장은 “미국의 원조는 군부가 민주 정부로 신속하게 전환케 하는 ‘지렛대(leverage)’ 역할을 해야 한다”며 지속적인 지원 필요성을 강조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이번 이집트 사태를 ‘쿠데타’라고 밝히지 않고 있으며 무르시가 비민주적으로 축출되는 과정에 대해 사실상 묵인하고 있다.

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
#카이로#이집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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