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양의 日전자왕국, 또 꺼내든 ‘감원의 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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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5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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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세계를 호령했던 전자왕국 일본에 대규모 구조조정 강풍이 불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 몰아닥쳤던 감원 태풍에 이어 3년 만에 또다시 대규모 감원이 이어지고 있다. 구조조정 대상은 사람만이 아니다. 누적되는 적자를 이기지 못하고 생산시설까지 중국과 대만에 팔아넘기고 있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천 인터넷판은 최근 ‘비탄에 빠진 일본주식회사’라는 기사에서 “일본 전자기업이 잘나가던 시대는 이제 다시는 오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 구조조정 한파

종업원의 안정적인 고용을 최우선으로 하는 일본 기업문화를 감안하면 최근 이어지고 있는 인력 구조조정은 이례적이다. 그만큼 일본 전기전자 기업이 생사의 기로에 서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방증이기도 하다. 29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파나소닉은 본사 인력 7000명 가운데 절반에 이르는 3000∼4000명을 올해 안에 구조조정하기로 했다. 이 회사가 본사 인력을 대규모로 줄인 것은 창사 이래 처음이다. 파나소닉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1만5000명을 감원한 데 이어 지난해 자회사인 산요전기의 가전부문을 중국에 매각하면서 3만5000명을 추가로 구조조정한 바 있다.

이에 앞서 소니는 지난달 초 그룹 전체 인력의 6%에 이르는 1만 명을 줄인다고 발표했다. 소니 역시 2008년 1만6000명을 줄인 데 이어 2차 구조조정이다. 파나소닉과 소니는 지난해 각각 사상 최대 규모인 7721억 엔과 4566억 엔의 적자를 냈다.

파나소닉, 소니와 함께 세계 TV 시장을 좌지우지하던 샤프는 지난해 3760억 엔의 적자를 이기지 못하고 본사 지분의 9.9%를 최근 대만 훙하이그룹에 넘겼다. 샤프의 액정패널 생산의 심장인 사카이(堺) 공장 역시 훙하이그룹의 지배를 받게 됐다.

이와 함께 자동차나 첨단 정보기술(IT) 제품에 들어가는 시스템반도체를 만드는 르네사스일렉트로닉스도 대만에 쓰루오카 공장을 매각해 1만4000명을 줄이기로 했다. 일본 언론들은 D램 반도체업체인 엘피다가 미국의 마이크론테크놀로지에 매각된 데 이어 르네사스마저 경영난에 빠지며 일본의 IT부품소재와 완제품 업체 모두가 총체적 파산 지경에 이르렀다고 전했다.

○ 풍전등화 일본 기업

일본 전기전자기업을 이 지경에 이르게 한 요인은 복합적이다. 제조업 경쟁력은 한국에 밀리고 첨단 IT 분야 기술은 미국에 주도권을 뺏기면서 어정쩡한 상황이 돼버렸다. 여기에 계속되는 엔화 강세와 지난해 동일본 대지진, 유럽발 재정위기는 결정타가 됐다.

하지만 포천은 일본 전기전자기업의 총체적 난국은 기업의 오만함과 시대 변화를 좇지 못한 부적응 탓이라고 꼬집었다. 일본 기업들은 무엇이 최고인지 소비자보다 더 잘 알고 있다고 자만했으며 정부 관료와의 수상쩍은 관계가 일본 기업의 몰락을 재촉했다는 것이다.

포천은 특히 “무엇보다 일본을 기술적으로 침몰시킨 것은 인터넷의 부상이었다”고 분석했다. 일본의 거대 기업들은 웹을 이해하지 못했으며 이를 따라가기에 급급할 뿐 선도할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일본 기업은 1990년대 초까지 높은 질과 낮은 가격으로 시장을 선도했지만 버블 붕괴 이후에는 생명 줄과 같은 연구개발비를 삭감해 자기 목을 죄는 실수를 범하기도 했다.

포천은 일본 기업의 최악의 적은 경쟁국의 산업정책이나 도전이 아니라 자기 내부에 있었음이 명확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도쿄=김창원 특파원 changkim@donga.com
#일본#전자왕국#구조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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