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빼든 中 개방파… 차기정권 밑그림 바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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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3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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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시라이 당서기 낙마 파장

14일 전격 해임된 보시라이(薄熙來) 중국 충칭(重慶) 시 당서기는 차기 상무위원으로 유력하게 거론돼온 인물이다. 총 9명인 상무위원은 중국의 주요 국정을 최종 결정하는 최고지도부다. 그 아홉 자리를 어떤 인물이 차지하느냐에 따라 중국의 국정 이념과 운영 방향이 좌우된다. 따라서 공산당 내 주요 계파 간에 더 많은 상무위원을 배출하기 위한 암투가 치열하다.

보 전 서기는 혁명원로의 자제인 태자당 소속으로서, 평등했던 옛 혁명시대로의 복귀를 주장하는 극좌파 노선을 대표한다. 최측근의 배신에서 시작된 그의 낙마에서 중국 내 노선투쟁과 권력계파 간 투쟁의 일면을 볼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보 전 서기의 낙마는 올가을 중국 차기 최고지도부 구성에 상당한 변화를 불러올 것으로 보인다.

○ 개인 문제에서 좌우파 노선대결과 계파 간 권력투쟁으로


보 전 서기가 낙마한 직접적 이유는 ‘사회악 척결영웅’으로 불리던 왕리쥔(王立軍) 전 충칭 부시장의 미국 망명 기도 사건이다. 보 전 서기도 앞서 “사람을 잘못 썼다”고 잘못을 인정했다.

이 사건은 그가 좌파노선의 핵심 인물이어서 2차 충격파를 낳고 있다. 중국 내 좌파은 빈부 격차 등 만연한 불평등과 사회 모순을 해소하려면 ‘성장에 앞서 배분’에 나서고 대대적인 부패 척결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런 정책을 펴온 인물이 보 전 서기다. 15일 오전 그의 해임 소식이 발표된 지 겨우 1시간여 만에 ‘중국판 트위터’ 웨이보(微博)에만 6만2000건의 단문이 뜨고 적잖은 누리꾼이 보 전 서기를 지지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일부 누리꾼은 “왕리쥔 사건에서 정작 반성해야 할 사람은 원자바오 총리”라고 주장한다. 전날 원 총리가 기자회견에서 “(보시라이는) 반성해야 한다”고 말한 것을 비꼰 것이다.

좌파노선과 달리 현재 중국의 주류적 견해는 점진적 개혁개방을 통한 지속적 성장이다. 대만 국립정치대 커우젠원(寇健文) 정치학 교수는 “보시라이 해임은 좌파에 대한 공격이며 ‘칼’을 어디까지 휘두를지는 상황을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은 보 전 서기가 중국 3대 권력계파의 하나인 태자당 소속이어서 약간 꼬여 있다. 중국 권력체제는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의 권력기반인 공산주의청년단파(團派·퇀파이)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을 중심으로 한 상하이(上海)방 △상하이방과 느슨한 연대를 구축하는 태자당 등 세 계파가 분점하고 있다. 노선 차이라기보다 출신 성분 등에 따른 분류다. 태자당이라고 모두 좌파적 노선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다만 보 전 서기의 낙마로 타격을 받은 태자당이 어떻게 차기 지도부에서 자신의 지분을 챙길지에 관심이 쏠린다. 권력 교체기를 코앞에 두고 ‘핵심 플레이어’가 빠진 만큼 계파 간 물밑 권력투쟁은 더욱 격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서는 비슷한 사건이 추가로 발생할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 향후 보시라이의 운명은


보 전 서기가 상무위원에 진입할 가능성은 사실상 사라졌다. 문제는 더 나락으로 떨어질지 여부다. 그가 정치국원 신분을 유지하느냐가 최대 관건이다. 현재로선 2006년 비리로 숙청된 천량위(陳良宇) 전 상하이 시 당서기와 같은 비극을 맞지는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천 전 서기는 낙마 이후 정치국원 신분을 박탈당한 뒤 체포돼 징역 18년형을 선고받았고 2009년 보석으로 석방됐다.

보 전 서기의 경우 현재까지 드러난 개인 비리가 없고 또 태자당과 좌파노선의 대표인물인 만큼 더는 가혹하게 책임을 추궁하지는 못할 것이라는 게 대체적 분석이다. 따라서 가을 18차 당 대회에서 최고 지도부가 교체될 때 부드럽게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는 수순을 밟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홍콩 아태연구센터 리펑(李風) 비서장은 대만 중앙통신에 “신화통신은 해임을 전하면서 보시라이 호칭을 ‘동지’라 불렀고 단지 서기를 맡지 않는다고만 했다”며 “보 전 서기는 여전히 정치국원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많은 학자가 왕리쥔 사건의 조사 결과가 어떻게 나오느냐에 따라 보 전 서기의 운명이 결정될 것으로 예상했다.

베이징=이헌진 특파원 mungchi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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