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을 감옥으로” 러 부정선거 규탄시위 격화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2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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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스크바 1만명 등 집권이후 최대규모… 내년 대선 빨간 불

《 옛 소련이 붕괴하고 러시아가 출범한 이래 최대 규모의 반정부 시위가 모스크바에서 벌어졌다. 4일 치러진 연방하원(두마) 선거에서 자행된 부정선거에 항의하는 반(反)푸틴 시위다. 시위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확산되는 양상을 보이자 러시아 당국은 모스크바 중심가에 군대를 배치하는 등 사태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
○ 1999년 푸틴 집권 이후 최대 시민저항

5일 폭우가 쏟아지는 가운데 모스크바 중심부 한 공원에서 야당인 자유민주당이 주최한 부정선거 규탄 모임이 열렸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한 수백 명의 참가자는 집회 후 연방보안국(FSB) 본부가 있는 루뱐카 광장으로 행진했다. 그 과정에 참가자가 크게 늘어나자 경찰은 곤봉으로 무차별 진압에 나섰다. 시위대는 “푸틴 없는 러시아를 원한다” “푸틴은 감옥으로 가야 한다”고 외쳤다. 이날 시위를 주도한 사회단체 ‘솔리다르노스트(연대)’의 올가 쇼리나 대변인은 “연행된 사람들 상당수가 15일간의 구금에 처해졌다”고 말했다. 일부 시위대는 선거 관리의 공정성을 문제 삼아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향해 행진하기도 했다.

이 시위를 중심으로 5일 모스크바 시내 곳곳에서 대규모 시위가 벌어져 최대 1만 명(경찰 추산 2000명)이 참가했다고 외신이 보도했다. AP통신은 “1990년대 소련 붕괴 이후 시민들이 길거리에 쏟아져 나와 시위를 벌이는 경우는 없었다. 수년 만에 최대 규모로 시위가 벌어진 것”이라고 전했다.

러시아 제2도시로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의 고향이자 정치적 기반인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도 5, 6일 이틀간 시위가 계속됐으며 100여 명의 야당 인사 및 시위자가 억류됐다. 공산당 지지자 400여 명도 5일 선거 부정에 대한 분노를 나타내며 모스크바에서 시위를 벌였다. 소련 붕괴로 지지기반을 잃은 공산당 지지자들이 길거리에서 시위를 벌이는 것은 이례적이다.

특히 ‘아랍의 봄’에서 큰 역할을 했던 SNS를 통해 시위대들이 결집하고 있어 주목받고 있다. 러시아 국영 TV가 외면하는 시위 소식은 이번 선거를 ‘페이스북 혁명’이라고 규정한 인터넷 사설방송 도시트 등을 통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경찰이 5일 야당 블로거 알렉세이 나발니 씨와 유명 사회운동가 일랴 야신 씨 등 약 300명을 연행한 소식도 나발니 씨 아내의 블로그를 통해 알려졌다. 이에 시민들이 붙인 댓글이 2500여 건에 이른다. 일부 사이트는 다음 반푸틴 시위가 6일 오후 7시에 열린다고 공지하기도 했다.

러시아 내무부는 수도에 군대를 투입하고 안보 경계수준을 높였다. 올레크 옐니코프 내무부 대변인은 “필요한 숫자만큼 (군이) 배치될 것”이라며 “러시아 주요 지역에 내무부 소속 군 1만1500명이 배치될 것”이라고 밝혔다.

○ 푸틴, 고향에서조차 수모


화장실서 투표용지 무더기 발견 4일 유튜브에 공개된 러시아 하원선거 투표용지. 모스크바의 한 투표장 화장실에서 집권여당인 통합러시아당 후보(6번)에게 기표한 투표용지들이 무더기로 발견됐다. 사진 출처 유튜브
화장실서 투표용지 무더기 발견 4일 유튜브에 공개된 러시아 하원선거 투표용지. 모스크바의 한 투표장 화장실에서 집권여당인 통합러시아당 후보(6번)에게 기표한 투표용지들이 무더기로 발견됐다. 사진 출처 유튜브
6일 공개된 지역별 개표 결과는 이번 선거에 반영된 민심과 부정선거의 실태를 보여준다. 집권 통합러시아당은 푸틴 총리의 출생지인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32.5% 득표에 그쳤다. 전국 평균 49.5%보다도 턱없이 낮은 득표율이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전통적으로 ‘비판적 지식인’들이 많아 집권당 지지가 낮은 곳으로 알려져 있긴 하지만 내년 3월 대선 출마를 앞두고 ‘신임 투표’ 격으로 치러진 이번 총선에서의 높은 거부감은 푸틴 총리로서는 가슴 아픈 정치적 패배로 해석된다.

수도 모스크바에서도 집권당 출신의 세르게이 소뱌닌 시장이 적극적으로 뛰었지만 46% 득표에 그쳤다. 모스크바 일부 지역에서는 공산당과의 격차가 불과 5%포인트까지 좁혀진 곳도 있었다.

반면 통합러시아당은 이슬람 지역으로 푸틴 집권 후 강압적으로 분리주의 움직임을 진압한 체첸 등에서 최고 99%의 지지를 받았다. 선거 부정이 없이는 나오기 힘든 압도적 지지율이다.

선거 부정 논란과 관련해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은 “러시아 유권자들은 선거 부정과 조작에 대해 신뢰할 만한 조사 결과를 알아야 한다”며 “러시아 당국이 행동을 취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번 선거를 참관한 유럽안보협력기구(OSCE)의 하이디 카글리아비니 대표는 “선거라기보다 일부만 선수로 참가할 수 있도록 제한된 게임과 같았으며 150개의 투표구 중 34곳에서 상황이 나빴다”고 부정 선거 실태를 고발했다.

한편 블룸버그통신은 푸틴 총리가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을 희생양으로 삼을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푸틴이 대통령이 된 직후 그에게 총리를 물려준 후 곧 교체해 버릴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구자룡 기자 bonhong@donga.com  
주애진 기자 ja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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