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물 넘친다” 필사의 저지 30일 태국 방콕 짜오프라야 강 인근에서 홍수로 범람한 강물이 제방을 부수고 마을로 쏟아지자 군인들이 휩쓸려가지 않기 위해 손을 맞잡은 채 버티고 있다. 짜오프라야 강은 수도 방콕을 가로지르는 태국에서 가장 큰 강으로 ‘태국의 젖줄’이라고 불린다. 방콕=AP 연합뉴스
태국 중부 도시 아유타야의 주민 농룩 씨(65)는 10일 오전 허리춤까지 물이 차오르자 허둥지둥 집을 버리고 나섰다. 기차를 타고 방콕에 있는 친척집으로 무작정 피신했다.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인 태국의 고대 수도 아유타야 전체가 3주 전 물에 잠겼다. 7월 말부터 3개월째 계속된 홍수 때문이었다. 집을 떠난 후 남아 있는 이웃으로부터 사람 목 높이까지 강물이 차올랐다는 말을 전해들은 그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하지만 농룩 씨는 29일 다시 아유타야로 향하는 귀향 열차에 몸을 실었다. 고향의 물난리는 여전히 진행 중이지만 그는 “집에 물이 빠지기를 기약 없이 기다려야 하는데 이제는 방콕에서 버틸 돈도, 의지도 없으니 돌아가는 것”이라고 한숨을 쉬었다. 차창 밖을 하염없이 쳐다보던 농룩 씨의 어깨에는 유달리 힘이 빠져 보였다.
수도 방콕 도심에서 차량을 이용해 침수된 북부 지역으로 갈 수 있는 방법은 현재 남아있지 않다. 모든 길이 물에 잠겼고 도로는 끊겼다. 가장 손쉬운 방법은 배 타고 노를 젓는 것뿐이라는 농담도 나온다. 현재 방콕과 아유타야를 잇는 교통편은 왕복 기차가 유일하다.
기자는 29일 방콕 북부의 돈므앙 역과 아유타야 역을 하루에 두 번 무료로 왕복하는 귀향 열차에 탔다. 거리는 약 72km. 돈므앙 역은 방콕으로 피난왔다가 아유타야로 되돌아가려는 역(逆)피난 행렬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방콕마저 물에 잠기며 안심할 수 없는 곳이 되자 사람들이 몰린 것이다.
돈므앙에서 출발한 기차는 락혹, 방푼, 치앙락노이를 지날 때까지 5분에 한 번 가다 서다를 반복했다. 평소 기차로 1시간 반이면 도착하는 노선이지만 이날은 4시간 반이 걸려야 도착할 수 있었다. 열차에는 방콕 북부 침수 지역 주민 300여 명이 타고 있었다. 집이 잠기며 급하게 몸만 방콕으로 피신했던 사람들은 다시 비상식량을 챙겨 열차에 몸을 실었다. 기차 안은 닭 잉어 개 등 함께 피난했던 가축들로 아수라장이었고 창문을 통해 수몰 지역의 악취도 흘러들어왔다.
방빠인의 공장에서 일하는 코끌린 씨(25)도 방콕에 아내를 남겨둔 채 3주 만에 아유타야의 집으로 향했다. 아직 물도 빠지지 않은 집으로 서둘러 가는 이유는 흉흉한 소문이 돌았기 때문이다. 아유타야에 도둑들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소문이 대표적이다. 도둑들이 사원이나 궁전 등을 돌며 고문서나 불상 등도 훔치고 있다고 했다.
방빠인에 있는 여름궁전 앞에 살고 있는 온나농 씨(25)는 “물에 잠긴 사원들을 지키는 관리인들이 남아있지만 생필품이 없어 힘들어 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아유타야 사원의 스님 대부분도 다른 지역으로 대피했다. 게다가 감전이 두려워 전기도 사용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한다. 홍수 이후 아유타야에서 사망한 30여 명은 모두 감전사했다는 게 현지 주민들의 설명이다.
목적지인 아유타야 역은 귀향자와 마중 나온 가족들의 상봉장으로 변했다. 역사는 이미 간이 대피소로 변해 있었다. 다행히 역 근처의 물은 다 빠져나갔고 관광지가 있는 시내도 빠르게 제 모습을 찾기 시작했다. 3주 전 2m 높이로 도시 전체를 뒤덮었던 물은 이날 현재 80cm 정도까지 빠진 상태다. 농룩 씨는 “집을 나설 때 지붕에 올려두고 나온 강아지가 눈에 밟힌다”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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