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아 ‘포스트 카다피’ 시대]반군측의 동영상으로 재구성한 ‘카다피 최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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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0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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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군에 생포 → 피범벅된 채 트럭에 → 주먹 발길질 → 머리 총상 여러개과도정부 “트럭 탄채 교전중 총에 맞아” 총살 부인동영상 본 美 전문가는 “가까운 거리서 처형한듯”

① 20일 수르트에서 체포된 무아마르 카다피가 반군에 둘러싸여 있다. 왼쪽 머리에 피가 흐르지만 멀쩡히 살아 있다. ② 피범벅이 된 카다피가 트럭에서 끌어내려지고 있다. ③ 유튜브에 공개된 동영상 화면.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하다. ④ 트럭에서 앰뷸런스로 옮겨져 수르트에서 미스라타로 가는 도중 촬영된 모습. 아무런 움직임이 없어 이미 숨진 것으로 보인다. 피를 닦아낸 얼굴에 여러 개의 총상이 보인다. 수르트·미스라타=로이터 AFP 연합뉴스
① 20일 수르트에서 체포된 무아마르 카다피가 반군에 둘러싸여 있다. 왼쪽 머리에 피가 흐르지만 멀쩡히 살아 있다. ② 피범벅이 된 카다피가 트럭에서 끌어내려지고 있다. ③ 유튜브에 공개된 동영상 화면. 얼굴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참혹하다. ④ 트럭에서 앰뷸런스로 옮겨져 수르트에서 미스라타로 가는 도중 촬영된 모습. 아무런 움직임이 없어 이미 숨진 것으로 보인다. 피를 닦아낸 얼굴에 여러 개의 총상이 보인다. 수르트·미스라타=로이터 AFP 연합뉴스
무아마르 카다피의 마지막은 ‘아프리카의 왕중왕’을 자처했던 대로 남자다웠나, 아니면 목숨을 구걸한 비참한 최후였나. 카다피는 현대 독재자 가운데 반군과의 전투현장에서 최후를 맞은 거의 유일한 이로 기록됐다. 이를 놓고 일부 지지자 사이에선 카다피가 망명으로 목숨을 부지하는 대신 전사(戰士)다운 최후를 맞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그의 최후 순간에 대한 증언들은 그런 평가를 어색하게 만드는 대목이 많다.

○ ‘교전 중 사망’인가 ‘처형’인가

리비아 과도국가위원회(NTC)의 2인자인 마흐무드 지브릴 총리는 20일 오후 “카다피를 생포했을 당시 건강에 문제가 없었다. 그런데 트럭에 태워 이송하다가 발생한 교전 도중 머리에 총을 맞았다. 이어 앰뷸런스로 옮겨 미스라타로 갔으나 도착하기 직전 숨을 거뒀다”고 발표했다. 즉, 생포한 카다피를 태운 차가 움직이자 또다시 교전이 발생했고 그 와중에 카다피가 머리에 총격을 받았다는 설명이다. 한 검시관은 복부를 관통한 총상도 치명적이었다고 밝혔다. 지브릴 총리는 “카다피의 시신을 검시한 검시관들은 그가 맞은 총알이 반군이 쏜 것인지, 경호원 측이 쏜 것인지는 밝혀내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병사들이 찍은 여러 동영상 화면을 종합하면 지브릴 총리의 설명과 배치되는 대목이 있다. 동영상을 보면 피범벅 상태에서 고개를 돌리거나 몸을 비틀었던 카다피가 어느 시점부터 전혀 움직이지 않는다. 촬영 시점은 명확하지 않지만 어떤 경우이든 “생포 당시엔 건강했고 이송이 끝날 즈음엔 이미 숨졌다”는 지브릴 총리의 발표와는 어긋난다.

한 동영상에는 병사들에게 이끌려 트럭에 강제로 태워진 카다피의 머리카락을 병사들이 잡아당기고 몸을 발로 차는 모습도 보인다. 또 다른 동영상에서는 “안 돼, 안 돼. 그를 살려줘”라는 외침이 들리는 가운데 일부 병사가 카다피의 머리카락을 잡고 트럭에서 끌어내려 앰뷸런스 쪽으로 끌고 가는 모습도 보인다. 병사들이 이미 아무런 움직임이 없는 카다피의 몸뚱이를 길바닥에서 굴리는 장면도 등장한다. 카다피의 동영상과 사진을 분석한 미국 법의병리학자 마이클 바덴 박사는 뉴욕타임스에 “카다피 머리에 최소 2개, 최대 4개의 총상이 있는데 두 개의 총상 모양이 거의 똑같이 생긴 점으로 미뤄 매우 가까운 거리에서 쏜 것으로 추정된다”며 “총상은 교전 과정에서 발생한 게 아니라 처형으로 생긴 것 같다”고 밝혔다.

한편에선 “카다피 경호원이 카다피를 쐈다” “카다피가 달아나는 과정에서 사살됐다”는 주장도 나오지만 동영상과 증언들을 감안하면 신빙성이 떨어진다.

○ 도주하다 무인정찰기에 발각

카다피는 수르트 함락이 임박해지자 반군의 포위망을 뚫고 탈출을 시도했다. 20일 오전 8시 반 수르트 메인광장에서 가까운 2구역에서 호송차량 80∼100대가 서쪽을 향해 한꺼번에 출발하는 게 곧바로 포착됐다. 미국 중앙정보국(CIA)과 영국 해외정보국(MI6) 등은 카다피가 추적당할까 봐 사용을 피해 오던 휴대전화 혹은 위성전화를 최근 수일 전 이용했다는 것을 알고 첨단 음성인식 기술을 통해 통화 속 목소리가 카다피임을 확인했다. 카다피가 탈출을 시도할 때는 이미 전자전 항공기와 무인항공기가 수르트 인근에 집중 배치된 후였다.

차량 행렬은 프랑스 공군 전투기와 미군 무인항공기의 위협사격을 받고 수르트 서쪽 3km 지점에 멈춰 섰다. 차량 2대가 부서졌지만 다른 차량은 무사했다. 이어 뒤따라온 반군 병력과 교전이 벌어졌다. 카다피군은 차에서 내려 흩어졌다. 카다피도 타고 있던 지프를 버리고 소수의 경호원을 데리고 고속도로 아래에 있는 대형 배수관 안으로 피신했다. 양측 간에 3시간가량 교전이 벌어졌다.

정오 무렵 반군 병사들이 다가오자 카다피는 “쏘지 마, 쏘지 마”라고 외치며 밖으로 나왔다. 카다피는 “뭐가 잘못됐지? 어떻게 돼가고 있는 거야?”라고 그들에게 되묻는 여유를 보이기도 했다. AP통신은 이미 부상한 카다피가 손을 든 채 “나의 아들들아, 죽이지 말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는 또 반군에게 “니들이 지금 하는 짓은 이슬람 율법에 어긋나는 것이다” “너희들이 옳고 그른 것을 아느냐” 고도 했다. 그러자 반군들은 “입닥쳐 개야”라고 했다. 반군 지휘관 무함마드 알라스는 알자지라를 통해 카다피를 발견했을 당시 그가 한 손엔 칼라니시코프 소총을, 다른 한 손에는 권총을 들고 있었다고 말했다. 카다피 옆에서 발견된 배낭 안에서는 황금 권총도 발견됐다.

한편 NTC는 미스라타의 한 시장의 냉장설비에 보관 중인 카다피 시신을 사망 직후 매장하는 이슬람 전통에 따라 21일 매장하려 했으나 사인을 둘러싼 논란을 감안해 매장을 늦추기로 했다.

성동기 기자 espr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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