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원전반대 집회 ‘월가 시위’ 닮아가나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0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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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한 구호-도로 점거 없이 도쿄 곳곳 축제분위기 연출… SNS 타고 규모 급속 확산

요즘 도쿄를 비롯한 일본 전국 각지에서는 주말이나 공휴일이면 어김없이 원전반대 집회가 열리고 있다. 하지만 격한 구호나 도로를 점거하는 불법시위는 아니다. ‘춤추고 노래하는’ 흥겨운 시위다. 참가자는 각자의 문제의식을 인터넷 등을 통해 공유하는 ‘느슨하게 연결된’ 이른바 아마추어 시민들이다. 월가의 탐욕을 겨냥하는 미국 시위와 구호는 다르지만 운동의 구심점이 없으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사람들이 모인다는 점에서 미국의 월가 시위와 닮았다. 아사히신문은 10일 “SNS와 같은 뉴미디어가 조직을 갖지 못한 사람들의 분노를 묶어내 밖으로 나오게 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9일 오후 5시경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도쿄 시부야역. 난데없이 북을 치고 피리를 불며 인도 위를 줄지어 걷는 600여 명의 시위대가 나타났다. ‘원전 노(NO)’ ‘후쿠시마를 기억하라’는 피켓을 든 이들은 호각, 트럼펫, 프라이팬 등 저마다 들고 나온 ‘시위도구’를 불거나 두드렸다. 하지만 시위대를 지휘하는 선전차량이나 ‘물러가라’ ‘타도하라’는 과격한 구호는 없었다. 피켓이 없었다면 축제 퍼레이드로 착각할 정도다.

임신한 부인과 함께 나온 한 남성은 “태어날 애와 집사람을 생각하면 위험한 원전은 이제 그만 멈추고 싶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참가자는 “원전에 대한 불안감을 어떻게든 표출하고 싶었다”며 “트위터로 시위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참여했다”고 말했다.

이날 집회는 건축업계에 종사하는 31세 회사원이 제안했다. 그는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지금까지 사회운동을 해온 노조나 운동단체가 프로라면 우리는 인터넷과 트위터를 통해 자발적으로 참여한 아마추어”라고 했다.

동일본 대지진 6개월째인 지난달 11일에는 도쿄 신주쿠(新宿)에 1만 명이, 19일에는 도쿄 메이지공원에 6만 명이 모였다. 집회 참가자가 계속 늘어나는 것은 자기주장을 하면서도 질서를 잃지 않는 시위의 평화적인 모습 때문이다. 일본은 ‘데모 알레르기’라고 할 정도로 집회에 집단적 거부감이 심하다. 일본에서도 1960, 70년대 안보투쟁, 반전운동 등 학생운동이 활발했지만 운동 분파 간의 노선투쟁과 선명성 경쟁 끝에 ‘과격폭력화’하면서 일반인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사회평론가인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 씨는 젊은 세대의 집회 참여 경향에 대해 “집회에 참가하는 이들은 원전문제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적인 문제에 분노를 느끼고 있다”며 “젊은이들이 새로운 스타일의 시위를 통해 자기표현을 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도쿄=김창원 특파원 chang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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