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강한 러시아 부활시킬것” 지지율 70%… ‘제왕의 길’ 연 푸틴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9월 26일 03시 00분


코멘트
2008년 3선 연임 금지 헌법조항 때문에 대통령직에서 물러났던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59)가 내년에 다시 크렘린궁으로 화려하게 귀환할 것이 확실시되고 있다. 한때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46)이 연임에 도전할 것이라는 관측도 있었으나 이변은 없었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푸틴 총리가 상트페테르부르크 부시장이던 1991년부터 참모로 일한 이래 ‘정치적 스승’으로 모셔온 푸틴 총리에게 다시 대권을 돌려주는 선언을 했다.

이날 푸틴 총리를 대선후보로 추대한 집권여당 통합러시아당은 전체 의석 450석 가운데 312석을 갖고 있는 거대 정당이다. 야당세력이 미미해 집권당 후보로 선출되면 사실상 차기 대통령을 예약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게다가 자신이 직접 후임자로 내세운 메드베데프 대통령이 헌법상 대통령 임기를 4년에서 6년으로 연장한 덕분에 푸틴 총리는 만약 연임하게 되면 72세가 되는 2024년까지 러시아를 통치하게 된다. 1964년부터 1982년까지 최장기 집권한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의 기록을 깨게 된다.

○ 푸틴 인기의 비결은?

60, 70%대를 오르내리는 푸틴 총리의 대중적 인기는 구소련 붕괴 이후 찾아온 정치적 혼란과 경제난을 극복하면서 생겨났다. 그의 집권 기간 중 시민사회가 무력화되고 서방국가들과의 갈등이 커졌다는 비판도 있지만 지지자들에게는 러시아의 힘을 회복시킨 ‘구세주’ 같은 존재로 인식되고 있다.

국가보안위원회(KGB) 후신인 연방보안국(FSB) 국장이었던 그는 1999년 보리스 옐친 당시 대통령이 총리 대행으로 전격 발탁하면서 정치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해 말 옐친 대통령의 사임으로 대통령 직무대행이 된 푸틴은 이듬해 선거를 통해 대통령에 당선됐다. 독립을 시도하던 체첸자치공화국을 무력으로 굴복시켜 러시아인의 자존심을 살렸으며, 대대적인 사정을 통해 막대한 부를 배경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해온 신흥 재벌들의 기를 꺾어놓았다.

석유와 천연가스 수출을 통해 1998년 디폴트(채무불이행) 직전까지 몰렸던 경제를 살려냈고 2008년 금융위기가 터지기 전까지는 연 7%의 고속성장을 지속했다. 경제가 살아나면서 급여도 안정적으로 지급됐고 생필품을 사기 위해 긴 줄을 서는 일도 점차 사라졌다. 이슬람 반군이 활동하고, 경제적 불평등과 부패가 만연한 러시아에는 결단력 있는 강한 지도자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팽배한 것도 그의 높은 인기를 뒷받침하는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이날 대선후보 추대를 수락한 푸틴 총리는 △경제성장률 6∼7% 수준 달성(올해 4% 성장 전망) △부자 증세 △연금 및 월급 인상 △군사력 강화 등을 약속하며 강력한 러시아 건설을 다짐했다.

AP통신은 푸틴 총리가 서구식 민주주의를 배격하고 ‘관리형 민주주의(managed democracy)’라는 이름으로 러시아를 강압적으로 통치해 왔다며 그의 복귀에 따라 관리형 민주주의는 앞으로 더 강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관리형 민주주의하에서 야당 세력은 집회조차 마음대로 열지 못한다. 허가받지 않은 행사는 경찰이 즉각 해산시키고 있다. 모든 주요 방송국은 국가 통제에 놓여 있어 야당의 주장은 거의 반영되지 않는다고 AP는 지적했다. 야당의 의회 진출도 가로막아 현재 의석을 가진 4개 야당 중 공산당만이 실질적인 야당 노릇을 하고 있다. 그나마 공산당의 인기도 감소하는 추세다.

○ 4년 전 예정된 권력 맞바꾸기?

푸틴 총리는 이날 연설에서 웃음을 띠며 “우리 두 사람은 누가 무슨 역할을 맡게 될지에 대해 수년 전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메드베데프 대통령은 “사람들이 항상 내게 언제 (대선 출마 여부에 대해) 결정할지를 묻고, (푸틴 총리와) 싸우고 결별한 게 아니냐는 질문도 했으나 우리가 오늘 제안한 것은 아주 깊이 검토한 결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사실 푸틴 총리와 나 사이에 동지적 동맹 관계가 만들어졌을 때부터 우리는 이러한 상황 전개를 논의했다”고 밝혀 2008년 대선 때부터 4년 후의 ‘역할 맞교대’가 예정되어 있었음을 시사했다.

하지만 러시아 정치분석가 드미트리 오레슈킨 씨는 “푸틴이 메드베데프가 다가올 위기들을 잘 대처하지 못할 것으로 우려해 맞교대를 택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크렘린과 여당 지지자들은 두 지도자의 이날 결정을 정치 안정화를 위한 올바른 선택이라고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반면 야권은 정치적 정체와 사회 붕괴를 가져올 최악의 결정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푸틴 사단’의 핵심 멤버로 통하는 알렉세이 쿠드린 재무장관 겸 부총리(51)는 메드베데프 총리 정부에서는 일할 수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독일 연방의회 외교위원회 위원장 루프레흐트 폴렌츠 씨는 “러시아가 대통령 후보를 정하는 데 있어 공개적이고 민주적인 경쟁에서 멀리 있음을 보여줬다”고 비판적인 견해를 나타냈다.

성동기 기자 esprit@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