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당국 “고속철 참사 보도말라”… 언론은 거부하고 ‘특별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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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8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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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 초강경 보도지침도 ‘언론 자유’ 못 꺾었다

7월 29일 심야의 보도지침으로 달라지기 전후의 신징(新京)보 30일자 1면. 지침을 받기 전(왼쪽)에는 ‘사망 배상금이 91만5000위안(약 1억4900만 원)으로 올랐다’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으나 지침을 받은 후에는 베이징 비 소식을 머리기사로 전하고 있다.
7월 29일 심야의 보도지침으로 달라지기 전후의 신징(新京)보 30일자 1면. 지침을 받기 전(왼쪽)에는 ‘사망 배상금이 91만5000위안(약 1억4900만 원)으로 올랐다’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으나 지침을 받은 후에는 베이징 비 소식을 머리기사로 전하고 있다.
7월 23일 중국 저장(浙江) 성 원저우(溫州)에서 발생한 고속철 추돌 참사에 대해 중국 일부 언론이 공산당의 보도지침을 거부한 채 비판적 보도를 내보내자 공산당이 초강경 보도지침을 다시 내려보냈다. 그러나 일부 언론은 보도지침을 다시 거부한 채 특별보도를 내보냈으며 일부 기자는 인터넷과 해외언론을 통한 폭로전에 나서고 있다.

▶본보 7월 30일자 A1면 참조
A1면 보도지침 거부, 할말 하는 中언론?


○ 다시 하달된 초강경 보도지침


7월 29일 오후 9시경 공산당 중앙선전부는 “신문 잡지 인터넷 등 모든 지방 매체는 고속철도 사고 관련 보도를 신속히 가라앉히라”는 내용의 보도지침을 내보냈다고 홍콩 언론들이 31일 보도했다. 이에 따라 사고 발생 일주일을 맞이해 특집 보도를 대대적으로 게재하려던 신문들이 준비했던 기사를 황급히 다른 기사로 대체하는 소동을 벌였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중궈징잉(中國經營)보는 이날 밤 늦게 7개 면에 걸쳐 준비된 기사를 취소하고 다른 기사로 대체했다. 21스지징지바오다오(世紀經濟報道)는 12개 면, 신징(新京)보는 9개 면을 다른 기사로 대체했다. 이들뿐 아니라 다른 대부분의 신문도 최종 기사마감 시간 직전에 1면에서 고속철 관련 기사를 빼거나 줄였다고 한다. 공산당의 논조를 충실히 반영하는 기사를 작성했던 관영 신화(新華)통신까지도 홈페이지에 게재됐던 사고 관련 기사의 분량을 줄이는 등 민감하게 반응했다. 사고 직후에도 보도지침이 내려왔지만 이날 선전부의 보도지침이 훨씬 더 강력했음을 보여준다.

○ 일부 언론, 보도지침 다시 거부

보도지침을 거부한 징지관차(經濟觀察)보 1일자. 1면(오른쪽)에 ‘철도부를 해부한다’는 제목의 비판적인 기사를 실었고, 고속철 
사고를 다룬 8개면 특집판을 냈다. 특집 첫 페이지 제목은 ‘원저우, 기적은 없었다’다. 베이징=이헌진 특파원 
mungchii@donga.com
보도지침을 거부한 징지관차(經濟觀察)보 1일자. 1면(오른쪽)에 ‘철도부를 해부한다’는 제목의 비판적인 기사를 실었고, 고속철 사고를 다룬 8개면 특집판을 냈다. 특집 첫 페이지 제목은 ‘원저우, 기적은 없었다’다. 베이징=이헌진 특파원 mungchii@donga.com
그럼에도 불구하고 징지관차(經濟觀察)보는 8월 1일자에서 ‘원저우에 기적은 없다’는 제목의 1면 머리기사를 포함해 9개 면 전면에 걸친 특별보도를 강행했다. 이 신문은 중국 철도부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따지고 의문을 제기했다. 논설위원들은 전국인민대표대회(중국의 국회)에 이번 사고에 대한 특별조사를 호소했다. 이들은 공산당 기관지 런민(人民)일보의 국제시사 자매지인 환추(環球)시보 등을 일일이 거론하면서 “사고를 호도하지 말고 언론의 양심을 가지라”고 맹비난했다. 과거에 볼 수 없었던 강경한 보도 태도다. 신콰이(新快)보와 난팡(南方)도시보, 양청완(羊城晩)보 역시 보도지침을 거부하고 특별보도를 강행했다.

○ 언론인들의 반발과 수난

보도지침에 따라 사고 보도를 대폭 축소하거나 없앤 언론 종사자들은 울분을 가슴속에만 담는 대신 홍콩 언론이나 인터넷을 통해 당국의 보도지침을 폭로하면서 울분을 토로했다. 신징보의 한 편집자는 31일자 홍콩 밍(明)보에 “가슴속에 슬픔과 분노가 있더라도 어쩔 수 없다. 2000여 명 직원의 생계를 고려해야 했다”고 말했다. 사진부 천제(陳傑) 주임은 “이 세계는 생명을 보잘것없이 여길뿐더러 넋이 쉴 곳도 없다”고 말했다. 신징보는 이번 사고에 의혹을 제기하고 정부의 미숙한 대처를 질타해온 대표적 매체다.

분노한 기자와 편집자들은 게재하지 못한 기사와 편집본을 중국판 트위터 ‘웨이보(微博)’에 올리고 있다고 SCMP가 전했다. 한 기자는 “오후 10시 텅 빈 면들을 채우라는 지시를 받았고, 밤 12시 더는 견딜 수 없어 울었다”고 말했다. 일부 기자는 홍콩 언론에 이 사고를 계속 추적해 달라고 당부했다. 광둥(廣東) 성의 한 기자는 “독재자들은 언론을 누르면 대중의 분노가 사라질 것이라고 보는데 이번에는 그들이 틀렸다”고 말했다.

이 사고를 비판 보도해 정직당한 중국중앙(CC)TV 왕칭레이(王靑雷) PD는 자신의 웨이보에 “강권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회폐단을 지적하고 바로잡는 기자가 단 한 명이라도 있으면 그 나라는 아직 혼이 있다”는 글을 올렸다. 홍콩기자협회는 지난달 30일 “중국 당국은 보도지침을 철회하고, 기자들에게 보복하지 않겠다고 약속하라”고 성명을 냈다.

베이징=이헌진 특파원 mungchi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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