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로에 선 이집트]무바라크 사임은 거부, 왜…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2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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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년 공직생활 질렸다… 9월 대선 안나온다”면서도…
30년 폭정-78조 축재 단죄 두려워 버티기

“나는 절대로 도망치지 않을 것이다. 죽어도 이집트 땅에서 죽는다.”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83)은 갈수록 거세지는 국내외의 사임 압력에 한사코 맞서 버티고 있다. 그는 3일 카이로 대통령궁에서 진행된 미국 ABC뉴스와의 인터뷰에서 “62년간의 공직 생활에 질렸고 이제 그만두고 싶다”고 하면서도 “(그러나) 남들이 뭐라 하건 신경 쓰지 않는다. 바로 지금, 오직 내 조국 이집트에 대한 걱정뿐”이라고 했다. 이날 인터뷰에는 프랑스 파리로 도망쳤다는 소문이 돈 후계자 차남 가말의 건재를 과시하려는 듯 동석시키기도 했다.

그는 “지금 사임하면 이집트는 국가적 혼란에 휩싸일 것이다. 무슬림형제단이 집권할까 봐 두렵다”고도 했다. ‘미국의 사임 압력에 배신감을 느끼느냐’는 질문에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훌륭한 사람이며 이집트의 지금 상황을 잘 헤아릴 것”이라고만 답했다.

이미 국내는 물론 국제사회가 한목소리로 체제 전환을 촉구하고 있는데도 무바라크 대통령이 이처럼 끝까지 버티는 것은 30년 독재 기간에 저지른 폭정과 부패가 드러날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다. 미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5일 “이집트는 경찰국가의 교과서”라며 30년 독재를 떠받친 폭정의 면면을 들춰냈다.

이에 따르면 무바라크 독재의 축은 야만적인 경찰이었다. 대표적인 예가 지난해 6월 북부 항구도시 알렉산드리아의 한 인터넷 카페에 들어서던 칼레드 사이드라는 청년이 경찰이 휘두른 몽둥이에 맞아 죽은 일. 당시 경찰의 폭력은 청년이 신분증을 보여주지 않은 것에서 비롯됐다. 지난 30년간 수천 명의 이집트인은 이처럼 아무 혐의 없이 구금, 체포 및 구타당했다고 한다.

고문도 만연했다. 국제인권단체 휴먼라이츠워치(HRW)는 “구금된 피고인들은 구타와 전기 충격, 고통스러운 자세로 오래 버티기, 며칠씩 서 있기 등에 시달렸으며 성폭행도 일상적으로 자행됐다”고 전했다. 이집트인권기구(EOHR)는 지난 20년간 460건의 고문 사건을 추적해 2000∼2009년 125명의 고문 피해자가 숨졌다고 폭로했다.

무바라크 대통령 일가의 부정축재 의혹도 짙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4일 무바라크 대통령 일가의 재산이 700억 달러(약 78조 원)에 이를 수 있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무바라크 일가가 영국 및 스위스 은행에 비밀계좌를 가지고 있고 런던 뉴욕 로스앤젤레스 홍해 해안의 부동산 등에 투자해 엄청난 부를 쌓았다고 전했다.

조 스토크 HRW 부국장은 “(현 정권) 최후의 날이 되면 무바라크 대통령이 이 모든 폭압과 부정의 근원으로 드러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전지성 기자 vers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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