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최고 한반도 전문가 오코노기 게이오대 교수의 마지막 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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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1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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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연구 40년 아쉬움 많아… 남은인생 ‘통일’에 바치고 싶어”

오코노기 마사오 교수가 18일 일본 도쿄 게이오대 강의실에서 마지막 강의를 마친 뒤 수강생에게서 받은 꽃다발을 들어 보이며 환하게 웃고 있다. 도쿄=윤종구 특파원 jkmas@donga.com
오코노기 마사오 교수가 18일 일본 도쿄 게이오대 강의실에서 마지막 강의를 마친 뒤 수강생에게서 받은 꽃다발을 들어 보이며 환하게 웃고 있다. 도쿄=윤종구 특파원 jkmas@donga.com
“일본이 35년 동안 한반도를 지배한 과거 역사는 부정할 수 없지만 앞으로 한일관계는 일본이 한반도 통일에 어떻게 공헌하느냐에 따라 획기적으로 달라질 것이다. 한반도가 통일된 훗날, 일본이 크게 기여했다고 평가받을 수 있다면 한일관계는 매우 좋아질 것이다.”

평생을 한국 연구에 헌신한 노교수의 당부에 대형 강의실을 가득 메운 300여 명의 학생과 동료 교수, 한국에서 온 일본 연구자의 표정은 숙연해졌다. 18일 오후 일본 도쿄 게이오(慶應)대에서는 일본 최고의 한국 전문가로 꼽히는 오코노기 마사오(小此木政夫) 교수(66)의 ‘마지막 강의’가 있었다. 1971년 게이오대에서 교편을 잡은 그는 3월 정년퇴임을 앞두고 이날 ‘나의 한국 연구 40년’이란 주제로 강단에 섰다.

그는 대학교 3학년 때인 1967년 이뤄진 한국과의 첫 인연으로 강의를 시작했다. 지도교수였던 이시카와 다다오(石川忠雄) 교수가 학부논문 제목을 미리 정하라고 해 ‘중국의 한국전쟁 참전’을 연구하겠다고 불쑥 말한 게 인생 항로를 결정하게 됐다는 것이다. 당시 일본 지식인 사이에선 한국을 상대하지 않으려는 분위기가 강했지만 그는 1972년 8월부터 2년간 연세대-게이오대 교환학생 프로그램 1호로 한국에 유학했다.

“한국으로 출발하기 직전 남북공동성명이 발표돼 남북대화가 시작됐고, 그 직후 한국에는 유신체제가 들어서고 북한은 수상제에서 주석제로 바뀌는 등 남북한 모두 독재체제가 강화됐다. 유학 초창기엔 박정희 대통령의 제2의 쿠데타로 대학 앞에 탱크가 주둔해 학교에 들어가지도 못했다. 유신헌법을 몇 번이고 읽으면서 ‘이 사람(박정희)은 다다미 위에서 못 죽을 사람’(편하게 못 죽을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격동의 한국 현대사를 경험한 것은 연구자로서 운이 좋았다.”

오코노기 교수는 한국을 국제정치의 시각에서 연구하기 위해 1981년 미국 하와이대와 조지워싱턴대로 건너갔다. 이후 일본으로 돌아와 쓴 책이 대표작 ‘한국전쟁-미국의 개입 과정’(1986년)이다.

이때부터 그는 일본의 대표적인 한국 연구자로 자리매김하며 ‘3김(金)’ 등 유력 정치인을 두루 만나고 한일 가교 역할을 하는 등 학문의 영역을 넘어 양국관계 발전에 힘을 기울였다. 일본이 하네다(羽田)공항을 국내선 전용공항으로 축소하려 했을 때 김포∼하네다 노선에 전세기를 남겨놓자고 주장했던 것도 그였다. 일본 학계에선 김포∼하네다 노선을 ‘오코노기 노선’으로 부르기도 한다.

오코노기 교수의 한국사랑은 남다르다. 그는 이날 “유학 당시 한국은 다정한 나라란 인상이 깊었고 지금도 이런 생각엔 변함이 없다”며 “2년간 유학하면서 반 이상 한국 사람이 돼 버려 일본에 돌아와 적응하는 게 힘들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또 “당시는 일본사람이 한국을 좋아하는 시기가 아니어서 오히려 내가 이방인이 된 느낌이었다. 난 영원히 그럴 것이라 생각했는데, 지금은 주변 사람 모두 한국 드라마를 좋아하고 한류 붐이 일고 있다. 내 생각이 틀린 것이다. 그러나 틀렸다는 게 기분 좋다”며 활짝 웃었다.

그는 “일본에 한류 붐이 일어난 것도 한국의 경제성장과 민주화가 이뤄졌기 때문”이라며 “박정희 시대에 경제발전을 이뤘고, 선거에 의한 민주화 혁명을 이끈 주역은 노태우, 김영삼 전 대통령이며, 독재정권에 가장 반발하고 탄압받은 인물은 김대중 전 대통령이었다. 민주주의가 정착된 것은 김영삼 시대이다”라고 평가했다. 이어 “한국과 일본은 밖에서 보면 산업구조와 국가목표가 비슷한 쌍둥이 국가로 보인다”며 “서로 경쟁하면서도 협력하는 나라다. 양국이 역사를 잊지 않으면서도 손잡고 나아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는 “여생은 ‘한반도의 분단과 통일’이라는 남은 숙제에 바치고 싶다”고 말했다.

도쿄=윤종구 특파원 jkma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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