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 될 뻔 케냐여성 법원이 난민으로 인정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10월 29일 15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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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냐에서 태어난 루오족(族) 이사벨라(가명·42)는 2004년 6월 교통사고로 남편과 사별했다. 남편의 장례를 치르자마자 남편의 형제들은 루오족의 전통인 아내 상속제도에 따라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와 성관계를 해야 한다고 협박하기 시작했다.

케냐에서 세 번째로 많은 민족인 루오족은 기혼 여성이 남편을 잃으면 남편의 형제가 선택한 인물에게로 상속되는 '아내 상속 제도'라는 관습을 두고 있다. 루오족 대부분은 이를 거부하면 '치라(chira)'라는 저주가 내려 결국 죽는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이 제도는 남편을 잃은 젊은 여성과 그 자녀를 남편의 형제가 부양하려는 취지였지만 점차 유족을 약탈하고 착취하는 수단으로 변질되고 있다.

이사벨라가 이를 거부하자 남편의 형제들은 남편의 부동산 권리증서나 트랙터 등 남편의 유산에 손을 대지 못하게 했고 죽이겠다는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 수차례 경찰 당국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아무런 도움을 받지 못하자 이사벨라는 2006년 단기 체류비자로 한국으로 입국했다. 그리고 일주일 만에 법무부에 난민 신청을 했다. 그러나 법무부에서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하자 이사벨라는 법무부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3부(부장판사 박정화)는 "법부무의 난민 인정 불허 처분을 취소한다"고 판결했다고 29일 밝혔다. 재판부는 "사망한 남편의 형제에게서 다른 남성과의 성관계나 혼인을 강요당하는 것은 성적 자기결정권 박탈이자 인간의 존엄성이 침해된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지만 조치가 이뤄지지 않았고 아내 상속이 뿌리 깊은 관습이라 개선이 쉽지 않은 점 등을 고려할 때 케냐 정부가 이사벨라를 보호할 충분한 능력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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