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날의 칼’ 영어 잘하는 아프간인들의 삶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5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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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소득 보장되는 출세 지름길
미군부역자로 찍혀 테러 타깃

30년 이상의 전쟁으로 황폐화된 아프가니스탄에서 영어는 ‘양날의 칼’이다. 안보는 물론이고 경제 분야에서도 미국을 포함한 서방세계의 지원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아프간에서 영어구사 능력은 출세가도를 달릴 수 있는 지름길로 연결되기도 한다. 하미드 카르자이 대통령이 능숙한 영어를 구사하는 것은 물론이고 행정부 각료 등 권력 엘리트들도 대부분 현지에 주둔하고 있는 서방의 군 및 민간 지원인력과 영어로 의사소통을 한다.

하지만 때로는 영어구사 능력이 자신의 목숨을 위태롭게 하기도 한다. 아프간 남부 칸다하르에서 영향력을 유지하고 있는 탈레반은 영어구사자들을 미군부역자로 간주해 무자비한 살해극을 벌이고 있다.

▽내가 영어로 대화할 줄 안다는 사실을 남에게 알리지 마라=칸다하르와 헬만드 주 등에서는 최근 미군과 일하는 아프간인에 대한 공격이 빈발한다. 올해 초부터 현재까지 27명의 아프간 정부 관료나 미군부대 용역 직원이 살해됐다. 지난해와 2008년 같은 기간에 각각 15명, 6명이 살해된 것과 비교하면 급격히 느는 추세다. 탈레반은 미군이나 지방재건팀(PRT)에 협조하는 사람이나 국제안보지원국(ISAF)에 근무하는 사람에게 “관계를 단절하라”는 사전 경고를 보낸 뒤 응하지 않으면 대낮에도 테러를 한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부대에서 통역을 하고 있는 자위드 아마드 씨는 21일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어디선지 모르지만 누군가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 공포감은 이루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런 테러로 가족이나 친지를 잃은 사람은 더는 미군이나 서방세계와의 관계를 이어가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들은 “내 가족의 죽음과 함께 영어도 한꺼번에 잃었다”며 공개적인 자리에서 영어로 이야기하는 것 자체를 꺼리고 있다.

▽모든 길은 영어로 통한다=아프간의 수도 카불과 북부지역에서 최고 선망 직종은 영어 구사가 가능한 곳이다. 높은 소득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주로 농업과 목축업에 종사하는 아프간인은 미화 기준으로 한 달에 평균 10달러 정도를 번다. 하지만 미군기지나 PRT 등에서 근무할 경우 하루에 5∼10달러의 수입을 올릴 수 있다.

영어를 통한 알짜배기 수입은 통역이다. 국가 전체가 서방세계의 도움을 받아 재건사업을 벌이고 있는 탓에 영어 의사소통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영어 통역 요원의 월평균 소득은 700∼800달러. 이는 군인이 받는 월평균 보수 78∼120달러, 교사 소득 70∼80달러, 경찰이 받는 34∼60달러보다 훨씬 많다.

현재 아프간인은 고교까지 무상교육을 받는다. 고교를 마친 사람 중 일부 부유층만이 대학과정을 이수하지만 여성은 대부분 고등교육을 받는 기회가 박탈된다. 아프간은 제1외국어로 영어를 채택해 중학교 1학년부터 교육 중이다. 대다수의 현지 통역은 카불과 같은 대도시에서 사교육을 통해 영어 구사 능력을 습득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워싱턴=하태원 특파원 triplet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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