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설의 달인’ 오바마 비결은…

  • 동아일보
  • 입력 2010년 2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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촌철살인 웃음폭탄
기도회-외국 순방 등 때와 장소 불문
연설때마다 ‘끼’ 발휘, 청중 휘어잡아

연설의 달인으로 불리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최대 강점은 자칫 딱딱해지기 쉬운 연설에 웃음이라는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이다. 평균 30분 정도 이어지는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이 지겹지 않게 들리는 이유는 중간 중간에 작렬하는 웃음 코드 덕분.

100년 만의 폭설로 워싱턴의 기능이 마비된 6일 민주당전국위원회(DNC) 겨울모임에 참석한 오바마 대통령은 귀빈들을 소개하다가 DNC 부의장인 마이크 혼다 하원의원이 미처 참석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는 “아, 지금 열심히 달려오고 있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아직 눈을 치우느라 삽질을 하는 중이라고 하네요”라고 말해 웃음을 이끌었다. 혼다 의원은 눈이 오지 않는 캘리포니아가 지역구다.

4일 DNC 정치자금모금 연회에서는 “여기 모이신 많은 분은 2년 전 내 이름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던 당시 회의론을 무릅쓰고 불확실성에 투자한 분들”이라고 말했다. 이날 오전 열린 연례 조찬기도회는 다소 엄숙한 자리였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최근 자신의 지지도 추락, 민주당의 주지사 및 상원의원 선거 연패, 건강보험 개혁의 의회 통과 불투명 등 정치적 지형을 설명한 뒤 “최근 부쩍 기도하는 횟수가 늘었다”는 농담을 던졌다. 이날 “나는 항상 옳진 않다”는 일종의 간증을 한 오바마 대통령은 “그 사실은 아마 아내인 미셸이 가장 잘 증명해줄 것”이라고도 했다. 백악관에서 연설을 하던 중 휴대전화 벨이 울리는 상황에서도 “누구네 오리가 꽉꽉거리네. 그 효과음 어디서 구할 수 있죠?”라고 말해 ‘소음’을 낸 당사자를 덜 미안하게 하기도 했다.

지난해 6월 11일 위스콘신 주 그린베이의 사우스웨스트 고교에서 열린 대중연설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한 남성이 열 살 된 딸(케네디)이 학교를 빼먹고 이 자리에 왔다고 하자 “쪽지(결석계)라도 한 장 써줄까요”라고 재치 있게 말했다. 실제로 오바마 대통령은 “케네디 담임선생님께. 결석을 이해해 주세요. 케네디는 저와 함께 있었습니다. 버락 오바마”라고 쓴 쪽지를 건넸다.

외국에서도 농담은 멈추지 않았다. 지난해 11월 13일 아시아 순방 도중 일본 총리와의 기자회견에서 일본 기자가 애초 약속보다 많은 두 개의 질문을 던지자 “일본 기자들도 미국 기자들과 똑같은 전략을 사용한다는 사실에 감명을 받았다”고 말했다. 또 이틀 뒤인 11월 16일 중국 상하이(上海)에서 가진 타운홀미팅에서는 케냐인 아버지, 인도네시아인 누나, 중국계 캐나다인 매형 등 가족을 소개한 뒤 “우리 가족이 모이면 유엔총회 같다”고도 했다. 하지만 그의 웃음 결정판은 지난해 5월 9일의 연례 백악관 출입기자 만찬이었다. 그는 “오늘 밤 정말 오기 싫었지만 어쩔 수 없이 참석했다는 것을 고백하고 싶다. 출입기자 만찬 참석은 내가 조지 W 부시 대통령에게서 물려받은 또 하나의 유산”이라는 말로 웃음폭탄을 터뜨렸다. 이 연설 이후 미국 언론은 오바마 대통령을 ‘최고 코미디언(comedian-in-chief)’이라고 칭했다.

워싱턴=하태원 특파원 triplet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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