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소리 제발 그만”… 日, 단카이세대에 눈총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12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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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부흥 이끈 60대 은퇴남들
돈-시간 많은데 할일 별로없어
기업에 전화해 시시콜콜 간섭
구매력 커 ‘내수 구세주’ 평가도

“실례지만 당신 회사의 경영 방침에 조언하고 싶으니 사장님 좀 바꿔주세요.”

“제품에 세제라고 써주면 금방 이해할 텐데 이렇게 복잡하게 쓰는 이유가 뭡니까. 그리고 세제는 분말로 돼 있는 게 정상 아닌가요?”

제품이나 서비스의 문제나 불편사항을 접수하는 콜센터. 최근 들어 일본의 콜센터 직원들이 민원 아닌 민원 전화에 일일이 대응하느라 진땀을 빼고 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대부분 이제 막 현직에서 은퇴한 60대 초반의 점잖은 남성들이다. 매뉴얼화된 고객대응에 익숙한 콜센터 직원으로서는 제품과 직접 연관이 없는 예상하지 못한 질문에 난감할 뿐이다.

주간 닛케이비즈니스 최신호가 일본 고도성장을 이끌어 온 ‘단카이(團塊) 세대’가 괴물집단으로 변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단카이 세대는 전쟁 직후인 1947∼49년에 태어난 일본의 베이비부머 세대로 2007년부터 정년퇴직을 하기 시작했다. 은퇴 후 시간은 많지만 딱히 할일이 없는 이들이 세탁 등 집안일을 도우면서 겪는 문제나 아이디어 제안을 콜센터에 수시로 전화를 걸어 해결하는 것이다. 2007년경부터 이 같은 경향이 두드러지면서 일본 기업 사이에서는 ‘2007년 문제’라는 신조어까지 생겨났을 정도다.

단카이 세대의 엉뚱한 행동은 지역의 자원봉사나 시민단체 활동에서도 눈총을 받고 있다. 이들은 자발적으로 가볍게 참여하는 봉사활동에 나와 활동단체의 엉성한 조직력을 탓하거나 체계화되지 않은 활동 내용을 질타하기 일쑤다. 또 같이 일하는 동료들에게 부하 직원 다루듯 지시하거나 조직의 운영 개선 계획을 불쑥 내놓기도 한다. 오랫동안 조직의 장 역할을 하면서 몸에 밴 상사로서의 의식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단카이 세대가 ‘사회적 왕따’를 당하는 데는 이들 세대 특유의 자부심 과잉 때문이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이들은 교육수준이 높고 전문성과 성실성을 두루 갖춘 일본의 경제신화 주역으로 비록 현직에서는 은퇴했지만 일할 수 있는 체력과 활력이 남아 있다. 오랫동안 치열한 경쟁을 거치며 살아남은 그들은 경험과 지식도 풍부하다. 근면과 성실함이 어느 세대보다 두드러지며 국가와 사회에 대한 충성심과 정의감도 강하다. 문제를 발견하면 직접 발 벗고 나서 이를 해결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투철하다는 것이다.

일본 내에서는 약 800만 명의 ‘최대 파벌’을 이루고 있는 단카이 세대에 일본의 미래가 달렸다는 지적도 나온다. 시간과 돈, 지혜를 두루 갖춘 이들 세대야말로 침체된 일본 경제를 구원해 줄 유일한 소비계층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본 총무성의 가구주 연령별 소비실태조사에 따르면 40, 50대 가구주의 월평균 소비지출액은 각각 35만 엔과 38만 엔이지만 60대는 31만 엔이다. 절대 액수로는 40, 50대에게 약간 뒤지지만 소비내용을 보면 40, 50대가 주거비와 자녀 교육비 등 필요성 경비 비중이 높은 반면 60대 소비는 교양 오락 취미를 위한 소비가 주를 이룬다. 이들은 또 부동산 등을 포함한 축적자산이 평균 2200만∼2300만 엔으로 1200만∼1800만 엔인 40, 50대보다 여유도 있다. 단카이 세대가 지갑을 얼마나 여느냐에 따라 일본 내수시장의 희비가 결정되는 셈이다.

도쿄=김창원 특파원 changkim@donga.com

::단카이(團塊) 세대

제2차 세계대전 직후인 1947∼49년에 태어난 일본의 베이비부머. 인구가 급격히 늘어난 세대이기 때문에 진학 취업 결혼 주택 문제 등으로 매사 심각한 경쟁을 벌이면서 일본 고도 경제성장의 원동력이 됐다. 이들은 대량생산형 조직사회에 순응적이면서 동세대끼리 잘 뭉치는 성향이 강해 ‘덩어리(단카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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