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채 썰고… 음식 나르고… 하루 1500명 무료급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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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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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워싱턴 외곽 빈민지원단체 ‘마르타즈 테이블’ 가보니…
흑인 등 10시30분부터 긴 줄
자원봉사자 150여 명 분주
자녀 교육 프로그램 운영도

미국 최대 명절인 추수감사절을 앞둔 23일(현지 시간) 워싱턴 외곽 14번가에 있는 비영리단체 ‘마르타즈 테이블’에 인근 사립 초등학교 학생들이 방문해 자원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워싱턴=최영해 특파원
미국 최대 명절인 추수감사절을 앞둔 23일(현지 시간) 워싱턴 외곽 14번가에 있는 비영리단체 ‘마르타즈 테이블’에 인근 사립 초등학교 학생들이 방문해 자원봉사 활동을 하고 있다. 워싱턴=최영해 특파원
추수감사절(26일) 직전 주말인 22일(현지 시간) 오전 10시 반. 워싱턴 시 외곽 서북쪽의 14번가에 있는 빈민 지원 비영리단체 ‘마르타즈 테이블’ 건물 앞엔 노숙인과 끼니도 때우기 힘든 빈곤층 주민 1000여 명이 길게 줄을 섰다. 주로 워싱턴 인근에 거주하는 흑인과 히스패닉으로 궂은 날씨에도 칠면조 고기를 얻기 위해 모여든 것. 자원봉사자 150여 명은 야채를 썰고 접시를 준비해 요리를 나눠준 뒤 운동장을 청소했다. 이곳에서 일하는 마르타 카즈 씨는 “지난해엔 750인분의 음식으로 충분했는데 올해는 경제위기 때문인지 1000명을 훌쩍 넘었다”며 “정말 바쁜 하루였다”고 말했다.

○ 하루 1200∼1500명에게 음식 나눠줘

다음 날 오전 10시 마르타즈 테이블의 부엌에는 20여 명의 ‘어린 손님’이 찾아왔다. 워싱턴 시내의 한 사립 초등학교에서 온 학생들은 미리 준비해 온 음식을 상자에 나눠 담았다. 이곳에서 보호받는 취학 전 아동들에게 나눠줄 점심식사다.

다른 한쪽에선 이동용 음식차량에서 배급할 음식을 준비하는 직원들과 자원봉사자의 손길이 바빴다. 이들은 주말도 거르지 않고 매일 1200∼1500명의 노숙인과 빈곤층 주민에게 샌드위치와 수프를 무료로 배급하고 있다. 하루 공급하는 음식만 해도 샌드위치 1500개, 디저트 1200개, 수프 65갤런, 커피와 차 65갤런이다. 지난 한 해만 100만 달러어치의 음식을 기부 받아 인근 저소득층 가족에게 나눠줬다.

○ 빈민 자녀 교육에 앞장

워싱턴 중심가에서 자동차로 10분만 달리면 도착하는 이곳은 시내의 화려한 경관과 달리 허름하기 짝이 없다. 1980년 이곳에 아동교육센터를 설립한 마르타즈 테이블은 아동교육에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빈곤층 자녀들이 질 높은 교육을 받는 데 소외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방침이다. 건물 1층엔 4개월부터 4세까지의 아동을 대상으로 ‘데이케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생활 형편에 따라 하루 13센트에서 최고 8달러까지 받는다. 아동교육센터를 책임지고 있는 앤 브룩오버 씨는 “아동의 65%는 흑인, 나머지 35%는 히스패닉”이라며 “대부분 인근 쇼 지역과 컬럼비아하이츠에서 온 아이들”이라고 말했다. 10대 미혼모와 한부모 가정의 아이들도 포함돼 있으며 일자리 때문에 아이를 맡기는 부모도 적지 않다.

지난주엔 건물 2층에 자체 도서관을 만들었다. 진열된 책은 대부분 외부에서 기증 받은 것이다. 8∼16세 학생을 대상으로 ‘애프터스쿨’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자원봉사를 나온 교사의 도움을 받아 운영된다. 지난해 정부로부터 우수 애프터스쿨로 인정받았다. 고교를 졸업한 학생에겐 대학 진학을 지도하고 직업훈련 프로그램에도 참여하도록 하고 있다. 애프터스쿨의 사이먼 존슨 책임자는 “프리스쿨에서부터 애프터스쿨까지 이곳에서 공부하는 빈곤층 아이는 290명에 이른다”고 말했다.

○ 자원봉사자들의 힘

비영리단체인 이곳의 연간 예산은 500만∼600만 달러. 예산의 3분의 1은 정부에서 지원하고 나머지는 외부 기부금과 자원봉사자의 노력으로 메워진다.

마르타즈 테이블 건물 1층에 마련된 ‘알뜰 가게’에서는 워싱턴과 버지니아 주 인근 메릴랜드 주민이 기부한 옷가지를 팔고 있었다. 한 해 100만 달러어치의 옷이 이곳에 기부된다. 가게 문을 연 지는 5년이 됐다.

알뜰가게 운영 책임자인 잉거 애슐리 씨는 “6세 어린아이부터 70대 노인에 이르기까지 한 해 1만여 명이 이곳에서 봉사한다”며 “종교단체와 기업체 직원 및 학생 등 많은 자원봉사자의 헌신이 없었다면 빈곤 아동 교육사업은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年1만여명 자원봉사자와 힘합쳐 가난에 허덕이는 이웃 구해야죠”
‘마르타즈 테이블’ 버스 사장

“구호의 손길을 바라는 빈곤층이 주변에 많습니다. 가난에 허덕이는 이웃을 구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하지만 자녀교육만큼 중요한 구호 활동도 없습니다.”

비영리단체 ‘마르타즈 테이블’을 9년째 운영하고 있는 린지 버스 사장(사진)은 23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소득수준이 낮은 사람들에게 교육 문제는 매우 심각하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우리가 하는 사업이 다른 시민단체와 차별되는 것은 빈곤층 아이들과 청소년을 위한 우수 교육 프로그램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라며 “1만여 자원봉사자의 활동도 큰 힘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빈곤층 아동들에게 교육 기회를 넓혀야 가난의 대물림이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며 “태어난 지 4개월부터 4세까지 아동을 돌봐주는 ‘데이케어 프로그램’은 돈을 벌기 위해 직장을 포기하지 못하는 주민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버스 사장은 “이곳에 기부하는 사람들은 자기 돈이 얼마나 많은 사람을 교육받도록 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기여했는지를 알고 싶어 한다”고 강조했다. 10대 청소년들이 직업훈련을 받고 사회에 적응하는 준비기간을 갖도록 도와주는 것도 이 단체의 주요 사업 중 하나다.

그는 이곳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하면서 빈민 아동교육의 중요성에 눈을 떴다. “9년 전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동료 변호사들은 저를 걱정하는 눈치였어요. 하지만 곤경에 처한 사람을 돕는 것만큼 뿌듯한 일은 없습니다.”

법대를 졸업한 그는 워싱턴의 변호사들이 모여 있는 K스트리트의 ‘깁슨 던 앤드 크러처’라는 유명 로펌의 변호사였다. 7년간 로펌에서 일하다 2000년 마르타즈 테이블의 경영을 맡았다. 버스 사장은 “경기가 얼어붙으면서 기부 활동도 위축되는 것 같아 걱정”이라면서 “하지만 자원봉사자들의 적극적인 참여는 어려운 때일수록 더욱 빛이 난다”고 강조했다.

워싱턴=최영해 특파원 yhchoi6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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