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세피난처 케이맨제도 과세 검토

  • 입력 2009년 10월 6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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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기에 세수 줄어 재정 위기

英외교부 “세금 부과하라” 압박

카리브 해의 대표적인 조세 피난처 케이맨 제도가 재정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기업과 주민에게 과세하는 문제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4일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영국령 케이맨 제도는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세수가 크게 줄면서 심각한 재정위기에 빠졌다. 이곳에는 세금을 피할 목적으로 그동안 헤지펀드 9253개를 비롯해 은행, 기업들이 몰려들었다. 케이맨 제도는 이들이 등록 때 내는 수수료로 재정을 충당해 왔는데 금융위기가 본격화한 이후 새로 들어온 기업들이 줄면서 재정난에 빠진 것. 정부 지출은 그대로인데 돈줄이 막히면서 흑자를 예상하던 재정 상황은 1억 달러 적자를 기록하게 생겼다. 연간 예산 규모 8억 달러인 곳에서 1억 달러 적자는 치명적이다.

관광수입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대다수 카리브 해 섬나라와는 달리 케이맨 제도는 수수료 수입이 관광수입과 함께 세수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크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선거 캠페인 당시 1만9000개 회사가 등록된 케이맨 제도 조지타운 어글랜드하우스를 ‘가장 큰 세금 사기가 벌어지는 곳’이라고 내놓고 비판했다.

갑작스러운 재정 악화로 정부가 발주한 건설공사가 중단되는 등 위기가 잇따르자 케이맨 제도 정부는 외자 유치 쪽으로 눈을 돌렸다. 일단 6000만 달러의 해외 자금을 끌어와 급한 불을 끄겠다는 계획을 최근 발표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영국 외교부가 ‘필요하다고 신청한 총 2억8400만 달러의 해외자금을 계획대로 확보하고 싶으면 등록 기업은 물론 5만7000명의 주민에게 직접세를 부과하라’는 통첩을 보냈다. 소득세는 물론 재산세, 법인세, 자본이득세, 판매세 등을 한 번도 부과한 적이 없는 케이맨 제도 입장에서는 조세제도 자체를 새로 만들어야 하는 엄청난 요구인 셈. 영국 외교부는 케이맨 제도와 같은 영국령이 세운 외자 유치 계획을 거부할 권한을 갖고 있다.

‘바꾸지 말라’는 현지 기업인들의 거센 반발과 ‘바꾸라’는 영국의 압력 사이에서 난처해진 케이맨 제도 정부는 요즘 깊은 고민에 빠졌다고 뉴욕타임스가 전했다. 케이맨 제도의 W 매키바 부시 정부 지도자는 “급격한 조세제도를 새로 도입할 경우 금융회사들이 케이맨 제도를 떠나가게 될 것”이라며 우려했다.

성동기 기자 espr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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