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전 베슬란 인질참사, 비극은 계속된다”

  • 입력 2009년 9월 1일 02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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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신들 ‘참사현장’ 다시 가보니
생존 아이들 심각한 후유증
납치-자살폭탄테러 줄이어

“눈을 감으면 늘 폐허가 된 학교가 보여요. 검은 옷을 입은 아빠 동생 친구들…. 나를 보고 화를 내며 막 소리를 질러요. ‘왜 하필 우리냐’고, ‘우리도 살고 싶었다’고….”

라나 양(14)은 오늘도 악몽에 뒤척이다 잠을 깬다. 아무리 애를 써도 눈앞에서 가족이 죽는 끔찍한 장면이 잊히지 않는다. 그는 5년 전 러시아 북(北)오세티야 공화국의 작은 도시 베슬란에서 일어난 대규모 인질참사의 생존자다. 최근 참극의 현장을 다시 찾은 BBC 슈피겔 등 외신들은 “시간이 흘렀지만 비극은 계속되고 있다”고 전했다.

○ 살아남은 자의 고통, 끝나지 않은 비극

2004년 9월 1일 평화롭던 도시 베슬란은 순식간에 아비규환으로 변했다. 러시아에 맞서 무장투쟁을 벌이던 체첸 반군 세력들이 초등학교를 기습해 1100여 명의 학생 교사 학부모를 인질로 잡은 것. 이틀 뒤 대치 끝에 러시아 특수부대가 진압작전을 벌이면서 어린이 186명을 비롯한 334명이 숨지고 783명이 다치는 참극이 빚어졌다.

살아남은 아이들은 당시를 생생하게 기억했다. 당시 8세였던 체르멘 군은 “인질이 돼 지쳐 잠들었다 폭발 소리에 깼더니 바로 옆에서 수류탄이 터져 인질범이 폭사해 형체를 알 수 없게 됐다”고 증언했다.

아이들은 심각한 트라우마(외상 후 스트레스성 장애)를 겪고 있다. 아직도 불을 끄면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집중력이 부족하고 공격적인 행동을 자주 보인다고 교사들은 전했다. 라나 양은 “그날 이후 이유 없이 화가 나고 짜증을 부린다”고 말했다. 당시 7세였던 블라디미르 군은 자신의 손을 칼로 자르기도 했다. 담당 의사는 “친한 친구들이 죽은 것에 대한 절망적인 반응”이라며 “아이들은 여전히 정신적 고문에 시달리고 있다”고 전했다. 생존자 가운데 심각한 부상을 입은 72명의 어린이들은 여전히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 러시아의 화약고 북캅카스

문제는 이 같은 참사가 단지 과거의 일이 아니라는 것. 지난달 28일 라시드 누리갈리예프 러시아 내무장관은 개학에 맞춰 학교에 대한 테러를 막기 위한 특별보안조치를 지시했다. 최근 북오세티야를 포함해 체첸 다게스탄 인구시 등 북캅카스 전역에서 이슬람 반군에 의한 납치와 자살폭탄테러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기 때문.

지난달 17일 인구시에서는 경찰본부를 노린 자살폭탄테러가 발생해 어린이 9명을 포함해 25명이 숨졌다. 체첸에서도 지난달에만 6차례 연쇄테러로 20여 명이 사망했다. 6월에는 유누스베크 예브쿠로프 인구시 대통령이 자살폭탄테러로 중상을 입었고 장관들이 줄줄이 피살됐다.

도쿠 오마로프를 중심으로 한 이슬람 강경세력들은 체첸을 넘어 전 캅카스 지역으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실업과 미비한 사회안전망에 낙담한 젊은이들이 속속 무장세력에 가담하고 있다. 자치정부의 부패도 한몫 하고 있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 인터넷판은 “북캅카스 지역이 테러리스트를 충원하는 비옥한 토양이 되고 있다”며 “베슬란 참사는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는 현재진행형”이라고 지적했다.

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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