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루무치 상점 문 열었지만… 불안한 평온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7월 10일 02시 57분



유혈사태 5일만에 위구르족 거주지 통행 재개
병력 수만명 시내서 철수… 주동자 검거 잇따라


대규모 유혈사태가 발생한 지 5일째인 신장(新疆)위구르 자치구의 수도 우루무치(烏魯木齊)는 9일 빠르게 정상화되고 있다. 일제히 문을 닫았던 관공서와 회사, 상점도 이날부터 하나둘씩 문을 열었다. 그동안 철통같이 봉쇄됐던 위구르족 집단 거주지도 상당수 통행이 재개됐다.
하지만 여전히 시내 곳곳에는 무장병력이 경계를 서고 있다. 또 무장경찰을 태운 트럭이 종종 시내를 순찰하고 하늘에는 정찰용 헬기가 계속 떠다녔다. 특히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은 “이번 유혈 사태의 주동자는 엄중 처벌하라”고 지시했다.

○ 중국 당국, 배후 검거 선풍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는 8일 밤 후 주석 주재로 회의를 열고 “이번 사태는 (극단적인 종교 세력과 민족 분열세력, 국제 테러세력 등) 3개 세력이 조직적으로 일으킨 폭력범죄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정치국 상무위는 “군대와 무장경찰이 투입돼 중요한 작용을 했다”고 말해 인민해방군이 이번 진압에 투입됐음을 공식 시인했다.
후 주석은 이날 “이번 사건을 모의하거나 배후조종한 핵심분자와 폭력을 행사한 범죄분자는 반드시 법률에 의거해 엄중 처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위구르족 출신 지식인들이 잇따라 검거되고 있다. 베이징(北京) 중앙민족대학 경제학부의 위구르족 출신 일함 토티(伊力哈木土赫提) 교수는 자신의 블로그에 5일 시위를 조직하는 글을 올린 혐의로 체포됐다고 ‘국경 없는 기자회’가 밝혔다. 또 다른 위구르인 작가는 단순히 블로그에 우루무치 사태에 관한 글을 올렸다는 이유만으로 체포됐다고 AFP 통신이 베이징(北京)발로 보도했다.
○ 정상 되찾는 우루무치
8일 시내 전역에 집중 배치됐던 수만 명의 병력과 경장갑차 등 장비는 밤사이 썰물처럼 빠져나갔다. 최초 시위 발생지로 많은 무장경찰이 나흘 내내 에워쌌던 런민(人民)광장은 이날 아침 경비 병력이 크게 줄었다가 오후 늦게 들어 다시 보강됐다.
일부 관공서와 상점 은행도 영업을 재개했다. 가장 큰 백화점인 톈산(天山)백화점은 이날 정상영업을 개시했다. 자치구에서 가장 큰 건자재 시장인 화링(華凌)시장도 문을 열었다. 얼다오차오(二道橋)와 다바자(大巴찰) 등 유혈사태 발생지도 통행금지가 풀렸다. 얼다오차오에는 이날 저녁 사태발생 후 처음으로 위구르족 노점상들이 줄줄이 거리로 다시 나왔다.
하지만 여전히 문을 닫은 가게도 적지 않다. 관공서와 은행도 일부만 다시 문을 열었다. 인터넷과 국제전화도 여전히 불가능한 상태다.
○ 기타 소수민족, “폭력은 안 돼”
위구르족과 함께 시내에서 모습을 감췄던 후이(回)족, 하싸커(哈薩克)족 등 다른 소수민족들도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이날 시내에 모습을 드러낸 소수민족들은 극도로 말을 아끼는 모습이었다. 우루무치 시내 신화루(新華路)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후이족 하이(海)모 씨는 “한족의 반감이 소수민족 전체로 확대될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화링시장 부근 옷가게에서 일하는 하싸커족 하니파(哈尼파·43) 씨는 “이번 사태로 우루무치의 평화가 깨져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반면 이날 신장사범대에서 만난 위구르족 대학생 4명은 “민족차별이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이라며 더 이상의 언급을 꺼렸다. 이날 다바자에서 만난 한 위구르족 청년은 “많은 위구르인이 죽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위구르족 사이에서는 600∼800명의 위구르인이 사망했다는 소문도 나돌고 있다.
한편 위구르 자치구에서 연락이 두절된 것으로 알려져 한때 긴장을 야기했던 한국인 관광객 120명은 모두 안전한 것으로 확인됐다고 주중 한국대사관 측이 밝혔다.
우루무치=이헌진 특파원 mungchii@donga.com
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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