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대통령 오바마가 노회한 美의회 이끄는 방법은

  • 입력 2009년 6월 11일 02시 55분


곳곳 의회인맥 심고 스킨십 즐겨라

부통령-비서실장 등 행정부-내각 의회통 많아
백악관으로 의원 초대, 독대하며 협조 요청

상하 양원으로 이뤄진 의회와의 긴밀한 협조관계나 도움 없이는 성공한 대통령으로 기록될 수 없다는 것은 미국 정가의 오랜 관행이다. 제 아무리 훌륭한 정견과 공약을 가진 대통령이라도 의회를 설득하지 못하면 뜻을 펼칠 수 없는 것이 정치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경제위기 극복과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등에서 벌이고 있는 두 전쟁의 승리, 각종 사회개혁 완수 등 벅찬 임무를 부여받은 ‘젊은 대통령’ 버락 오바마의 진짜 도전은 노회한 의회와의 관계정립이라는 말이 나온다.

현재까지 오바마 대통령의 대의회 관계는 7870억 달러의 경기부양법 통과, 3조6000억 달러의 공격적인 예산을 편성하는 등 성공적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물론 민주당이 무당파를 포함해 상원 59석과 하원 256석이라는 압도적 다수를 점하고 있다는 점에서 당연한 결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그의 치밀한 대의회 전략이 낳은 개가라는 평가도 나온다.

○ 상원은 바이든, 하원은 이매뉴얼

오바마 행정부는 인적 구성에서부터 친의회적이다. 대통령 자신과 조지프 바이든 부통령이 상원의원 출신인 것은 물론 람 이매뉴얼 비서실장, 짐 메시나 부실장, 피트 라우스 선임고문 역시 의회에서 잔뼈가 굵은 의회통들이다. 내각에도 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 켄 살라사르 내무장관, 힐다 솔리스 노동장관, 레이 러후드 교통장관 등 의원 출신 장관이 즐비하다.

이들 중 대의회 관계의 핵은 상원의원 36년 경력의 바이든 부통령. 스스로 ‘비공식 의회대사’를 자처하는 그는 지금도 상원의 헬스클럽을 이용하며 상원 구내식당에서 식사를 하면서 의원들과 스킨십을 한다. 옛 동료들과 자연스럽게 대화하며 그들의 불만이나 요구사항을 대통령에게 전하거나 반대로 행정부의 고충을 토로하며 의원들을 설득하는 전령사 역할을 한다. 하원을 주로 맡고 있는 이매뉴얼 비서실장도 휴대전화 번호를 의원들에게 알려주며 “언제든 전화하라”면서 접촉면을 넓히고 있다.

상·하 양원 주요 위원장 비서실장이나 보좌진도 오바마 행정부의 참모진으로 대거 중용됐다. 현재 최대 역점과제로 추진 중인 의료보험개혁의 키를 쥐고 있는 상원 재무위원회 맥스 보커스 위원장의 비서실장이었던 짐 메시나는 이매뉴얼 비서실장 아래서 부실장으로 활동 중이다. 보커스 의원은 메시나 부실장이 오바마 행정부에 합류할 당시 아들의 결혼식 연회사에서 “아들 2명을 떠나보낸 것 같다”고 말했을 정도로 신임이 깊었다.

○ “대통령과 집무실에서 마주하니…”

오바마 대통령은 주요 의회인사들과 독대를 즐기는 것으로 유명하다. 네브래스카 주 벤 넬슨 상원의원은 뉴욕타임스매거진과의 인터뷰에서 “당연히 비서실장이 배석하는 자리인 줄 알고 가 보면 대통령과 단둘이 집무실 오벌오피스에 앉게 돼 놀란다”며 “대통령이 의회를 존중한다는 느낌을 받았고 개인적 친분을 쌓았다는 기분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번에 소니아 소토마요르 대법관 지명전에는 상원 법사위원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의사를 타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화당 출신으로 76세인 찰스 그래슬리 상원의원은 “민주당 출신이건, 공화당 출신이건 머리털 나고 처음 대통령에게서 대법관 지명과 관련해 전화를 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보커스 상원의원도 대통령과 한 차례 독대를 했고 대통령 가족들과 만찬까지 했다. 그는 당시 대통령부인 미셸 여사 옆에 앉아 자녀들의 교육과 관련한 이야기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보커스 의원 아들은 현재 오바마 대통령 두 딸이 다니는 사립학교 시드웰프렌즈를 졸업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의원들의 백악관 시설 이용 요청도 흔쾌히 수용하고 있다. 5월 중순까지 320명의 하원의원과 80명의 상원의원이 백악관을 방문해 백악관 내 극장이나 운동시설을 사용했고 백악관 투어 등을 즐긴 것으로 집계됐다.

○ 빌 클린턴이 반면교사?

오바마 대통령이 대의회 관계에 노력하는 또 다른 이유는 민주당 출신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맛본 ‘개혁실패’를 되풀이하고 싶지 않은 탓인 것으로 알려졌다. 40대 대통령으로 워싱턴 주류와는 거리가 먼 아칸소 주지사 출신으로 대통령에 오른 클린턴 전 대통령은 젊은 패기를 앞세워 워싱턴의 의회권력을 개혁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시도했지만 번번이 의회의 무관심 또는 조직적 반발에 밀려 좌절했다. 1993년 당시 의석분포는 민주당이 상원 56석과 하원 258석을 가진 거대 여당이었지만 클린턴 행정부 첫 개혁과제인 의료보험개혁은 의회에서 부결됐다.

워싱턴=하태원 특파원 triplet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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