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갸루산업 “불황이 뭐예요?”

  • 입력 2009년 6월 5일 03시 00분


소녀풍 패션산업 대박

“‘갸루(ギャル) 산업혁명’이 시작됐다.”

최근 일본 패션업계에서 나오는 말이다. 갸루란 ‘소녀’를 뜻하는 영어 ‘걸(Girl)’을 일본식으로 발음한 단어. 원래 염색한 머리, 짙은 눈 화장 등을 즐기는 젊은 일본 여성을 가리키던 속어다. 그러나 요즘은 자신을 꾸미는 데 적극적이며 비용도 아끼지 않는 여성을 의미한다.

금융위기로 일본도 불황이 극심한 가운데 갸루 관련업계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갸루 산업혁명’이란 말도 시장이 세분되고 규모가 커지면서 등장했다. 시사주간지 아에라 최신호는 일본 패션업계를 비롯해 유통, 출판업계까지 영향을 끼치는 갸루 비즈니스의 현황과 인기 비결을 분석했다.

3월 갸루 스타일을 주제로 열린 ‘도쿄 걸스 컬렉션 2009’엔 세계적 명품업체 ‘질 스튜어트’가 참가했다. 도요타, 유니클로 등 대기업과 일본 외무성, 환경성 등 정부기관이 협찬했다. 아에라는 명품업체와 대기업 진출을 이례적인 것으로 평가했다.

도쿄의 ‘시부야 109’는 원래 의류, 가구 등을 판매하는 일반 백화점이었으나 1990년대 후반부터 갸루 전문 쇼핑몰로 바뀌었다. 1990년대 초반 경영난에 시달리던 이곳은 갸루 관련 브랜드가 입점한 시기인 1995년부터 매출이 줄곧 증가했다. 지난해 매출액은 286억 엔을 기록하며 13년 전(141억 엔)에 비해 배 이상으로 늘었다. ‘시부야 109’의 경우 매장 직원으로 갸루를 고용해 고객과 감성을 공유한 점이 주효했다고 한다.

갸루는 출판업계에서도 주목받는다. 갸루의 라이프스타일과 쇼핑정보 등을 소개하는 전문잡지(‘팝틴’)가 생겨날 정도. 이 잡지는 매달 30만 부가량 팔려 폐간잡지가 속출하는 등 출판업계 전반이 불황인 것과 대조적이다. 업계에선 갸루 비즈니스가 소비자 취향과 구매력을 정확히 분석해 성공한 것으로 본다.

전문가들은 갸루 시장의 성공 원칙을 다섯 가지로 꼽는다. △저렴한 가격 △섹시한 디자인 △유행과 소비자 시각을 동시에 고려한 믹싱(mixing) 감각 △디테일주의(헤어스타일, 손톱 등 몸 전체를 만족시킨다는 뜻) △현실감 있는 판타지 등이다. 소비자였던 갸루족들이 패션업체 경영인, 디자이너, 잡지사 기자 등 각 분야에 진출해 이 같은 문화를 확산시킨 것도 갸루 비즈니스가 성장하고 있는 이유로 꼽힌다.

남원상 기자 surre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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