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침체로 선박해체 산업 호황

  • 입력 2009년 5월 29일 02시 57분


“유지비 대신 고철값 챙기자”

벌크-유조선 해체 작년의 4배

세계적 경제위기의 여파로 해운업 경기가 침체되면서 운항 비용이 많이 드는 낡은 선박을 해체해 고물로 파는 ‘선박해체 산업’이 호황을 누리고 있다. 이에 따라 전 세계 선박해체 물량의 80%가량을 처리하고 있는 방글라데시 인도 파키스탄 등 남아시아 등 3개국에서는 일자리가 늘어나는 등 경제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국가의 선박해체 노동자들은 열악한 근무 환경 속에서 고통에 신음하고 있다.

▽급증하는 선박해체=28일 영국 해운조사 전문기관 클라크슨과 로이드리스트에 따르면 올 1∼4월 전 세계에서 해체용으로 매각된 선박은 339척으로 지난해 전체(487척)의 70%에 육박했다. 또 지난해 전 세계 선박해체 규모는 1250만 DWT(재화중량톤수·선박에 실을 수 있는 모든 화물의 중량)였는데 올 1분기에는 이미 750만 DWT의 선박이 해체됐다. 특히 해운업 경기 침체의 영향을 크게 받는 벌크선(원자재 운반선)과 유조선 해체 규모는 지난해 880만 DWT에서 올해는 3210만 DWT로 네 배 가까이 늘어날 것으로 클라크슨은 전망했다.

이처럼 선박 해체가 느는 이유는 세계 경제가 침체되면서 화물운송과 여객선 이용이 줄고 운임이 하락하면서 선주(船主)들이 낡은 선박을 계속 운항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고물용으로 팔아넘기는 것이 더 낫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선박해체 업체들은 선박을 분해해서 나온 고철 등을 판매해서 얻은 수익의 일부를 선주에게 주는데 남아시아 국가들은 환경 관련 규제가 약하고 인건비가 싸기 때문에 선주가 많은 이익을 챙길 수 있다. 15개 국제 환경·노동단체들이 참가하고 있는 ‘선박해체 관련 비정부기구(NGO) 플랫폼’은 이달 초 발간한 보고서에서 “선주가 방글라데시 업체에 해체할 선박을 팔면 유럽 업체에 넘기는 것보다 10배 이상의 수익을 챙길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고통 받는 노동자들=해체용 선박에는 화학물질과 인화성물질 등 유해물질이 방치돼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남아시아의 노동자들은 아무런 준비 없이 맨몸으로 현장에 투입돼 하루 1∼2달러의 낮은 임금을 받으며 혹사당하고 있다고 독일 DPA통신이 전했다. 그린피스 등 환경단체들은 남아시아에서 1년에 50∼60명의 노동자가 선박해체 과정에서 각종 사고로 목숨을 잃는다고 지적했다. 방글라데시에서 환경운동을 벌이고 있는 리즈와나 하산 변호사는 CNN에 “극빈층 노동자들이 먹고살기 위해 할 수 없이 선박해체 작업장에서 일하고 있는데 이는 노동이라기보다는 착취”라고 비판했다.

장택동 기자 will7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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