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오쯔양 회고록, 혁명원로 친구 4명이 8년 설득해 ‘햇빛’

  • 입력 2009년 5월 23일 02시 59분


“공산당과 정부가 많이 좋아졌어. 예전 같으면 감옥에 갇혔거나 유배를 떠났을 텐데 말이야.”

중국 공산당 원로 중 한 명인 중국 시사 월간지 옌황춘추(炎黃春秋)의 두다오정(杜導正) 사장은 최근 홍콩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는 1989년 톈안먼(天安門) 사태의 내막을 폭로해 중국 정부를 당혹케 한 자오쯔양(趙紫陽) 전 중국 공산당 총서기(사진)의 회고록 ‘국가의 죄수’를 만드는 데 깊이 개입한 것으로 밝혀졌다.

홍콩 야저우저우칸(亞洲週刊)은 ‘절친한 친구 3명’으로 알려진 회고록 탄생의 숨은 주인공 4명을 최신호(31일자)에서 소개했다. 이들은 중국 국가신문출판서 서장을 지낸 두 사장과 두싱위안(杜星垣) 전 국무원 비서장, 샤오훙다(蕭洪達) 전 중앙기율검사위원회 부서기, 야오시화(姚錫華) 전 광밍일보 총편집인이다. 모두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전에 중국 공산당에 가입해 항일전쟁에 참가한 혁명원로들이다. 또 부총리부터 부(副)장관급까지 중앙정부의 고위직을 맡았다.

이들이 자오 전 총서기에게 회고록 집필을 권유한 때는 1992년. 당시 73세로 가택연금 3년째였던 자오 전 총서기는 “의미 없는 일”이라며 이를 거절했다. 이들은 집요하게 인민과 역사를 위해 기록을 남겨야 할 의무가 있다고 그를 설득했다. 결국 2000년 즈음 자오 전 총서기는 마음을 바꿨다.

당시 70대 후반부터 80대 후반이던 이들은 직접 사관(史官)이 되어 자오 전 총서기의 구술을 녹음했다. 처음에는 질문을 하고 답변을 받아 적었다. 그러다 신빙성을 높이기 위해 녹음 방식으로 바꿨다. 회고록 구술 및 녹취 작업엔 3년이라는 긴 세월이 소요됐다. 당국에 들키지 않기 위해 한여름에도 문을 모두 잠그고 작업했다. 테이프는 3벌 복사해 각각 따로 숨겨 놨다. 하지만 이 증언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6년이 더 필요했다.

두 사장은 “당시 책을 내는 것을 불가능했다”며 “이 책은 있는 그대로를 담고 있고 평가는 독자와 역사에 맡긴다”고 말했다. 그 사이 86세인 두 사장과 95세인 두 전 비서장만 남고 나머지 3명은 세상을 떠났다. 자오 전 총서기와 샤오 전 부서기는 2005년 숨졌다. 야오 전 총편집인은 영문판 발간을 두 달 앞둔 올 3월 눈을 감았다.

베이징=이헌진 특파원 mungchi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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