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r.디트로이트’ 찬사가 비난으로

  • 입력 2009년 3월 31일 02시 54분


■ 릭 왜거너 GM회장 사임

정부 자금지원 호소하며

전용기로 상원출석 빈축

노조눈치 보며 개혁 늦춰

무능경영 상징으로 전락



“이제 최악의 상황을 넘겼다. 제너럴모터스(GM)는 다가올 100년을 선도할 준비가 돼 있다.”

릭 왜거너 GM 회장(56)은 지난해 9월 GM 창사 100주년 기념식 때까지만 해도 GM의 회생을 자신했다. 그러나 불과 6개월 뒤인 30일 ‘GM호’의 조타수 자리에서 내려왔다.

그의 인생은 탄탄대로였다. 고교 시절엔 뛰어난 농구 선수였다. 1975년 듀크대를 우등으로 졸업하고 1977년 하버드대 경영학석사(MBA)를 거쳐 곧바로 GM에 입사했다. 최고재무책임자(CFO) 등 요직을 거쳐 2000년 최고경영자(CEO)에, 2003년 회장에 올랐다. ‘가장 미국적인 재계 리더’라는 찬사와 함께 ‘미스터 디트로이트’라는 별명도 얻었다.

하지만 GM이 추락하면서 CEO 취임 초 70달러를 넘나들던 주가는 최근 1달러대로 폭락했다. 북미시장 점유율도 28.3%에서 18.3%로 곤두박질쳤다. 경제위기 이전부터 흔들리던 GM은 작년 9월 리먼브러더스 파산 이후 생존을 장담할 수 없는 지경에까지 몰렸다. 왜거너 회장은 의회와 백악관 등을 상대로 유동성 위기를 호소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는 당당했다. 위기의 원인을 경기침체와 금융위기 탓으로 돌렸다. “우리가 도산하면 수백만 명이 일자리를 잃을 것”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하지만 의회와 국민의 반응은 차가웠다. 오히려 지난해 11월 상원 금융위원회에 출석하면서 회사 전용기를 이용했다가 “구걸하러 온 사람이 전세기를 띄웠다”는 비난에 시달렸다. 방만한 경영과 무책임에 대한 비판 목소리도 커졌다.

그는 지난해 12월부터 자세를 한껏 낮췄다. 다시 상원에 출석할 때는 800여 km를 자동차로 달려왔다. 왜거너 회장은 “우리가 실수해 벼랑까지 밀려왔다”며 구제금융만 제공해 주면 강도 높은 구조조정에 나서겠다고 의회에 읍소했다. 연봉 1달러만 받겠다는 약속도 내놨다. “신뢰를 저버리고 소비자를 배신했다”는 참회의 광고를 통해 여론에도 호소했다.

지난해 12월 19일 백악관이 GM에 134억 달러를 긴급 지원하는 대책을 내놓으면서 한숨 돌렸지만 2월 다시 166억 달러를 추가로 정부에 요청할 정도로 상황이 악화됐다. 2월 실적 발표도 참담했다. GM은 지난해 4분기(10∼12월) 손실이 96억 달러, 지난해 전체로는 309억 달러에 이른다고 발표했다. 최근까지도 “(파산신청 없이) 자체 구조조정만으로도 가능하다”며 희망을 버리지 않던 왜거너 회장은 30일 결국 백악관의 압력을 이기지 못하고 사퇴했다.

뉴욕타임스 등 미국 언론은 △고유가 등 외부 변수에 대처하지 못한 점 △노조와의 대결을 우려해 높은 노동비용 구조를 개선하지 못한 점 △너무 많은 자동차 브랜드를 유지하려 했던 점 등을 왜거너 회장의 낙마 요인으로 지적했다. 왜거너 회장의 사퇴는 구조조정 없이 지원은 없다는 정부 의지를 보여준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김재영 기자 redfo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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