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미디어 그룹을 가다]<9>글로벌 미디어 꿈꾸는 日 방송들

  • 입력 2009년 3월 3일 02시 58분


《지난달 27일 일본 아사히신문 본관 7층 ‘신포털편성센터’. 임시 간판이 붙은 사무실에서 30여 명이 책상을 마주하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아사히신문과 TV아사히, 일본 점유율 2위인 통신회사 KDDI가 공동 프로젝트를 준비하는 곳이다. 3사는 지난해 12월 휴대전화를 위한 인터넷 정보 제공 사업에서 제휴 방침을 밝혔다. 그 제1탄으로 올여름부터 아사히신문의 기사나 TV아사히의 뉴스 영상을 KDDI의 휴대전화를 통해 동시 제공하는 유료서비스를 준비 중인 것이다.》

日정부 “거대 미디어기업이 대안” 관련법 준비 한창

사토 요시오(佐藤吉雄) 센터장은 “젊은층이 뉴스에 친근감을 갖게 하고 미디어의 영향력을 유지한다는 의미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신문과 통신 등의 미디어 융합을 통한 수익모델 창출”이라고 말한다.

이 프로젝트의 목표는 3년 뒤 유료 가입자 1000만 명 확보. 가입자들에게 월 200엔을 받는다면 연간 매출액 240억 엔 정도를 기대할 수 있다. 또 3사는 지금까지 없던 서비스나 크로스미디어 광고 등 다양한 가능성도 모색할 방침이다.

일본의 미디어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신문과 전국방송망이 계열화돼 운영돼 왔다. 이는 TV방송국 설립 자체가 전국지들이 중심이 됐기 때문이다.

그 출발점은 1952년 요미우리신문이 주도한 ‘니혼TV 방송망’이 일본에서 최초로 TV방송 예비면허를 받은 것이다. 쇼리키 마쓰타로(正力松太郞) 당시 요미우리신문 사장은 새로운 유력 매체로 TV를 지목하고 NHK보다 앞서 TV방송 인가를 받아냈다. 이어 다른 신문사들도 경쟁적으로 방송에 진출했다.

일본 정부는 1959년 방송의 다양성과 지역성 유지를 위한 조치로 ‘미디어집중 배제의 원칙’을 만들었다. 구체적인 내용은 △동일 사업자의 신문과 방송, 라디오의 동시 소유 금지 △한 사업자가 소유 경영할 수 있는 방송국을 하나로 제한 △이 사업자가 복수의 방송국에 출자할 경우 10% 이상 주식 보유 금지(1995년 일부 20%로 완화) 등이다.

그러나 이 원칙은 21세기 매체 환경의 급변으로 유명무실해지고 있다. 신문-방송의 협력시스템은 최근 정보기술(IT) 발달에 따른 방송 통신의 융합 추세와 경기침체로 인해 ‘미디어 빅뱅’이 거론되면서 미디어들이 서바이벌 대책을 찾는 하나의 필수 단위가 되고 있다.

최근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신문과 방송, 통신 등을 융합한 ‘크로스미디어’ 전략이다. ‘하나의 콘텐츠를 신문 방송 등 복수의 이종 미디어를 통해 내보내는 방식이다. ‘신포털편성센터’의 경우처럼 아사히신문, 니혼게이자이신문, 요미우리신문 등에서 제휴 방송사와 통신회사를 접목한 크로스미디어 전략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그 배경에는 새로운 수익 기반을 서둘러 구축하지 않으면 매체의 생존이 위태롭다는 위기의식이 깔려 있다.

거대 미디어 복합기업(conglomerate)을 향한 움직임도 본격화하고 있다. 선두 주자는 일본 민방 매출액 1위인 후지TV. 지난해 10월 계열 19개사를 통합해 인정방송지주회사인 ‘후지미디어홀딩스(HD)’를 발족했다. HD의 사장으로 취임한 도요다 고(豊田皓) 후지TV 사장은 이때 “지주회사 창립을 제2의 창업기로 삼아 일본을 대표하는 미디어 복합기업을 향해 나아가겠다”고 선언했다. HD의 휘하에는 후지TV를 비롯해 닛폰TV, 포니캐니언, 후소샤(扶桑社) 등 후지산케이그룹의 미디어기업이 집결했다.

TBS도 올 4월 홀딩컴퍼니로 전환해 회사명을 ‘도쿄방송홀딩스’로 변경할 계획이다. 이 같은 인정지주회사 제도는 2011년 지상파의 디지털 전환에 따른 지방 방송국의 경제적 어려움을 해결해주기 위한 의미도 있다. 일단 한 그룹으로 묶이면 ‘미디어 집중 배제의 원칙’은 유명무실해진다.

일본 정부는 특히 콘텐츠 시장 확대와 미디어의 경쟁력 확보는 미디어 업계로서도 사활이 걸려 있지만 국가경쟁력으로 연결된다고 보고 있다. 총무성은 지난해부터 디지털화가 일단락된 2012년에 ‘정보통신법’을 제정하기 위한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기술혁신을 통해 가능해진 일을 법의 정비가 늦어져 불가능하게 되는 일이 없도록 하겠다는 것.

예컨대 현재는 광통신망으로 흐르는 NTT의 동영상 제공은 ‘방송’과 마찬가지이지만 방송법의 적용을 받지 않는다. 이에 따라 기존의 방송법, 전파법, 전기통신사업법 등을 융합해 TV, 인터넷, 라디오 등 개별 전송 수단을 뛰어넘어 콘텐츠, 플랫폼, 전송 인프라, 전송서비스를 비롯한 기능별로 법체계를 재편성한다는 게 일본 정부의 구상이다.

법이 개정되면 미디어의 횡적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할 수 있어 통신회사 기업체 금융기관 등의 자본을 더해 방송 출판 영화 신문사를 거느리는 미디어 복합기업을 만들 수 있다는 게 총무성의 구상이다.

일본 경제산업성이 구축하고 있는 ‘콘텐츠 글로벌 전략’도 비슷한 목표를 담고 있다. 경제산업성은 2007년 9월 “현재 14조 엔 규모인 일본의 콘텐츠 시장을 20조 엔으로 확대한다”는 취지의 보고서를 내놓았다. 이때 미래 콘텐츠시장의 주체는 “모든 콘텐츠를 최종적인 시장으로 보내기까지 수직적으로 통합하고 제작하는 복합기업”이라고 상정하고 있다. 일본형 미디어 복합기업이 출현하는 것은 시간문제인 듯하다.

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 공영방송 NHK 글로벌화 박차

‘서바이벌 게임’에 들어간 민영방송들과 달리, 일본의 공영방송 NHK는 2008년 한 해 동안 승승장구했다. 시청률이 부쩍 올랐고 각종 불상사로 줄어들었던 시청료 수입도 회복세. 이제는 글로벌화 전략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NHK는 지난달 2일부터 “세계 어디서나 언제나 NHK”라는 구호하에 국제방송을 대폭 강화했다. 우선 일본과 아시아의 정보를 영어로 24시간 세계에 발신하는 ‘NHK월드TV’(www.nhk.or.jp/nhkworld)를 방송과 동시에 인터넷으로도 볼 수 있게 개편했다. 매 정시에 영어뉴스 ‘뉴스라인(newsline)’를 내보내며 그 사이사이 외국인 시청자를 위해 NHK 프로그램을 영어로 번역해서 내보낸다. 이를 위해 도쿄 시부야(澁谷)의 NHK방송센터에 국제방송 전용 스튜디오를 새로 지었을 정도.

일본 방송가에서는 선구적일 정도로 과감한 인터넷 활용방침도 눈에 띈다. NHK는 현재 위성과 케이블TV 등을 활용해 70개국 약 8000만 가구까지 확대한 시청가능지역을 인터넷을 통해 약 1억5000가구로 늘린다는 목표를 내걸었다. 동영상 공유사이트 유튜브에 NHK월드TV의 공식 홈페이지(youtube.com/nhkworld)를 개설했고 지난해 말부터 지나간 프로그램을 인터넷으로 유료 제공하는 ‘NHK 온 디맨드’ 서비스도 시작했다.

이 같은 국제방송 강화의 궁극적인 목적은 “정보화시대를 맞아 일본도 세계에 대한 발신을 강화한다”는 것. 2006년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개혁’의 일환으로 결정됐다.

사토 도시유키(佐藤俊行) NHK방송총국 특별주간은 “당시 미국 CNN이 113개국, 영국 BBC가 111개국에서 볼 수 있었던 반면, NHK 방송은 겨우 12개국에서만 볼 수 있었다. 이에 따라 TV 국제방송에 대한 정부지원과 프로그램 제작을 위한 민간자회사(일본국제방송·JIB) 설립 등을 결정했다”고 말한다.

2008년 NHK와 마이크로소프트, 민방 4국이 출자해 설립한 JIB가 만드는 프로그램에는 처음으로 광고 게재도 허용된다. 기존 예산에 더해 국제방송에 투여되는 정부 특별지원금은 2008년에 15억 엔, 2009년에 24억 엔의 규모다.

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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