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희 - 다구치가족 만난다

  • 동아일보
  • 입력 2009년 2월 12일 02시 55분



韓-日 외교 면담주선 합의

《1987년 대한항공(KAL) 858기 폭파사건 범인으로 사형 판결을 받았던 김현희 씨와 북한에 납치돼 김 씨에게 일본어를 가르쳤던 다구치 야에코(田口八重子·북한명 이은혜) 씨 가족이 조만간 만나게 될 것 같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나카소네 히로후미(中曾根弘文) 일본 외무상과 11일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회담을 가진 뒤 “양측의 면담이 머지않아 이뤄질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일본인 납북자 문제를 포함한 ‘북한 문제’ 해결을 위한 한일 간 공조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납북자 문제 협력 의미=유 장관은 이날 “일본의 납치자 문제에 대해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가능한 지원을 계속해 나가겠다”며 이번 만남 주선이 ‘인도주의적 결정’임을 시사했다. 정부 당국자도 “일본인 납치자 문제는 우리와의 문제는 아니고, 일본과 북한 간 걸림돌일 뿐이었다”며 “우리 정부의 태도가 바뀐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6자회담 등 북한 문제를 다룰 때 납치 문제에 지나치게 집착했던 일본과 이에 소극적이던 과거 한국 정부의 태도에 비하면 적지 않은 기류 변화가 엿보인다. 노무현 정부 시절만 해도 정부 내에선 일본의 납치 문제 제기를 못마땅해하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일본인 납치자 문제는 북한과 일본 간 최대 현안이었다. 북-일 수교가 이 문제로 논의의 진전을 보지 못하자 일본 측은 북핵 6자회담에서도 줄곧 이를 이슈화하면서 대북 지원 분담을 거부했다.

이처럼 ‘뜨거운 감자’에 그동안 침묵을 지켜온 한국 정부가 한 발짝 개입한 것이다.

김 씨 문제가 떠오른 것은 그가 참여정부 시절 ‘KAL기 사건이 조작됐다는 증언을 하라’는 강요를 받았다고 주장한 지난해 말이다. 김씨는 일본 NHK 방송과의 지난달 인터뷰에서 다구치 씨 가족과 만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김 씨와 다구치 씨 가족의 만남 자체가 북한을 크게 자극할 내용임에도 한국 정부가 이들의 만남을 허용한 것은 북한의 예상되는 반발을 감수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국제공조를 통한 북한 문제 해결을 내세우는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이 반영된 셈이다.

박철희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북한이 미사일 문제 등으로 자꾸 사건만 일으키는 데 대해 한국 정부가 북한 문제를 일본과도 공조해 풀어갈 수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제공조에 한목소리=이번 외교장관 회담에서 무엇보다 눈에 띄는 내용은 국제 경제무대에서 양국 간 긴밀한 협력을 강화하기로 한 대목이다. 양국 외교장관은 이날 세계적인 경제위기 속에서 4월 런던 주요 20개국(G20) 금융정상회의는 물론 세계무역기구(WTO),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금융안정화포럼(FSF) 등 국제기구에서도 공조하기로 했다.

특히 나카소네 외상은 “일본은 한국의 FSF 가입을 지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12개 주요 선진국 재무장관과 중앙은행 총재, 금융감독기구 대표, 국제통화기금(IMF), 세계은행 등을 포괄하는 FSF에 한국이 가입하는 것은 한국의 국제적 위상을 제고하는 기회가 된다.

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

도쿄=서영아 특파원 s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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