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 이코노미’ 현장을 가다]<7>美 IBM의 ‘빅 그린 프로젝트’

  • 입력 2009년 1월 24일 03시 44분


미국 콜로라도 주 볼더의 IBM 그린데이터센터 옥상에 설치된 백업용 발전기. 이 발전기는 비상시 19MW의 전력을 공급한다. 사진 제공 IBM
미국 콜로라도 주 볼더의 IBM 그린데이터센터 옥상에 설치된 백업용 발전기. 이 발전기는 비상시 19MW의 전력을 공급한다. 사진 제공 IBM
‘그린 정보기술(IT)’의 미래를 보여주는 사례로 꼽히는 스웨덴 스톡홀름의 교통시스템 개념도. 통행량과 차량 속도, 번호판 등을 자동 인식해 혼잡통행료를 부과하고 교통흐름을 조절하는 데이터로 사용할 수도 있다. 사진 제공 IBM
‘그린 정보기술(IT)’의 미래를 보여주는 사례로 꼽히는 스웨덴 스톡홀름의 교통시스템 개념도. 통행량과 차량 속도, 번호판 등을 자동 인식해 혼잡통행료를 부과하고 교통흐름을 조절하는 데이터로 사용할 수도 있다. 사진 제공 IBM
CO₂ 관리부터 車엔진 효율성 증대-컴퓨터 리모델링까지

새는 에너지 잡는 똑똑한 ‘그린 IT’

《미국 중서부 콜로라도 주 덴버공항에서 자동차로 2시간 거리에 있는 인구 9만 명의 작은 도시 볼더. 로키산맥으로 둘러싸인 넓은 들판 한가운데에 지난해 5월 완공된 2만5000여 m²(약 8400평) 규모의 IBM 데이터센터가 서 있다. 40년 가까이 된 낡은 데이터센터를 최첨단 ‘그린 데이터센터’로 증·개축하는 데 3억5000만 달러(약 4830억 원)가 들었다.》

IBM 경영 다각화로 IT 컨설팅 선두로 부상

첨단기술 개발에 10년간 100억달러 쏟기로

美 ‘디지털 뉴딜’ 등 힘입어 각국 경쟁 가열

개인용컴퓨터(PC) 사업부를 매각하고 정보기술(IT) 솔루션 회사로 거듭난 IBM의 새 모습을 웅변하는 시설이다. 흔히 IBM 하면 PC를 떠올리기 쉽지만 IBM은 20만 명의 서비스 전문가를 보유한 IT 서비스와 컨설팅 분야의 세계적인 선두주자다.

IBM이 2007년 발표한 ‘빅 그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마련된 이 데이터센터에는 전력 효율을 높이기 위해 각종 최첨단 기술이 적용됐다.

IT 산업이 세계 이산화탄소(CO₂) 배출량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 남짓으로 세계 전체 항공기가 배출하는 양과 비슷하다. IT 산업의 성장 속도와 기업의 비즈니스 과정에서 차지하는 중요도를 감안할 때 조만간 IT는 CO₂ 배출의 주범 중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실제로 IT 산업의 전력 소모량은 4년마다 2배씩 증가하고 있다.

이 때문에 최근 몇 년 새 각국의 IT 기업들은 앞 다퉈 에너지 사용을 최소화할 수 있는 기술 개발과 데이터센터 구축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이미 ‘그린 IT’는 단순히 IT 장비의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수준을 넘어 교통 시스템, 송배전 시스템, 유통, 의료, 수자원 관리, 금융 등 거의 모든 생활과 산업 영역에서 에너지 소비를 줄일 수 있도록 돕는 서비스 산업으로 진화하고 있다. 이른바 ‘똑똑한 지구(스마트 플래닛)’ 만들기가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 저(低)탄소의 똑똑한 세상 만들기

지난해 11월 새뮤얼 팔미사노 IBM 회장은 “더 효율적인 시설망, 교통관리, 식품유통, 수자원 관리, 의료 시스템 등에 대한 공공과 민간 투자를 통한 기술 중심적인 경제 회복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최근 지구촌을 흔들고 있는 글로벌 경제위기의 극복 방안으로 IT를 기반으로 한 ‘스마트 플래닛’ 만들기를 제안한 것이다.

비효율적인 발전과 송배전 시스템으로 67%가량의 전기 에너지가 낭비되고 있고, 교통 혼잡으로 매년 세계적으로 780억 달러에 이르는 비용과 시간, 에너지 소비를 유발하고 있다는 것이 팔미사노 회장의 설명이다.

IBM은 앞으로 매년 10억 달러(약 1조3800억 원)씩 10년간 총 100억 달러를 투자해 데이터센터의 에너지 사용을 줄이고 환경에 대한 영향을 최소화할 수 있는 그린 IT 기술 개발에 나서기로 했다.

그동안 IT 관련 각종 환경규제는 단말기, PC 등 IT 기기 제조와 유통, 소비 과정에서의 CO₂ 배출을 최소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그러나 그린 IT는 단순히 IT 분야에 국한되지 않는다. CO₂ 관리, 상수원 관리, 대체에너지 개발, 컴퓨터 모델링, 자동차 엔진 효율성 증대 등 거의 모든 산업 분야에서 에너지 사용과 비용을 줄이는 방안으로 ‘IT’가 주목받고 있는 것.

미국 뉴욕 맨해튼에서 기차로 1시간 거리에 있는 IBM의 중앙연구소. 지난해 12월 이곳을 찾았을 때 2000여 명의 연구원은 그린 IT를 활용한 ‘똑똑한 지구 만들기’ 프로젝트를 동시다발로 진행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만난 셰런 넌스 IBM ‘빅 그린 혁신’ 부문 부사장은 “IBM은 대체에너지, 물, 전력 송배전 시스템, 교통 시스템 등 다양한 분야에서 IT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IBM 중앙연구소에는 최근 세계적으로 각광을 받고 있는 태양광 발전에 필요한 솔루션 개발 조직까지 꾸려졌다.

○ 세계는 지금 그린 IT 경쟁 중

그린 IT가 본격적으로 주목을 받은 것은 지난해 초부터.

주요 국가와 기업들은 이미 발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으나 한국은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고 있다.

유럽연합(EU), 일본 등 선진국과 IBM, 마이크로소프트 등 글로벌 IT 기업들은 지난해 초 이후 앞 다퉈 그린 IT 분야에 막대한 투자를 늘리며 새로운 성장 동력 찾기에 나서고 있다.

EU는 IT 제품 관련 환경 규제를 새로운 무역장벽과 연계하고 있으며 EU의 연구개발 계획인 FP7(2007∼2013년)에서 ‘IT를 통한 지속가능한 성장’을 주요 주제로 채택해 이미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일본도 IT 분야 에너지 절감을 위한 혁신적인 IT 기술을 개발하고자 ‘그린 IT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미국은 그동안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교토의정서 비준을 거부해 왔으나 버락 오바마 정부는 벌써부터 ‘디지털 뉴딜’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그린 IT 분야 등에 막대한 투자를 할 것임을 약속하고 있다.

미국의 비영리기구인 정보기술혁신재단(ITIF)은 오바마 정부가 IT 분야에 300억 달러를 투자할 경우 약 100만 개의 일자리를 새로 창출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했다.

한국은 최근 정부가 그린 IT 분야에 앞으로 5년에 걸쳐 5401억 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하면서 본격화하고 있다.

뉴욕=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교통시스템 하나 바꿨을뿐인데…

혼잡통행료 부과시스템 구축

만성교통체증-환경오염 줄어

■ 스톡홀름 성공사례

스웨덴의 수도 스톡홀름은 2005년까지만 해도 서울만큼 극심한 교통 체증을 겪고 있었다. 2005년 평균 출퇴근 시간은 전년 대비 18% 길어졌다. 환경오염도 날로 심화하고 있었다.

2006년 스웨덴 정부는 혼잡통행세를 시험 도입했다. 단순히 교통 혼잡을 줄이는 것뿐 아니라 대중교통 체계를 개선하고 환경오염을 줄이기 위해서였다. 정부는 혼잡통행세를 도시 외곽순환도로를 건설하는 데 쓰기로 했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6개월간의 시범 실시 기간이 끝날 무렵 교통량은 25%가량 줄었다. 교통 혼잡이 줄면서 주행속도가 빨라진 대중교통의 운행시간표를 새로 짜야할 정도였다. 심지어 도심에 있는 상점들은 매출이 오히려 6%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것뿐만 아니었다. 2005년에 비해 주중 대중교통 이용자가 4만 명 넘게 늘었다. 교통량이 줄면서 도심 차량 배기가스 배출량은 14% 감소했다. 이산화탄소(CO₂)는 도심에서 40%가량 줄었다. 2007년 스웨덴 정부는 혼잡통행세를 본격 시행했다. 그리고 그해 미국 연방정부는 스톡홀름과 같은 혼잡통행료 부과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해 1억3000만 달러(약 1700억 원)의 예산을 책정했다.

단순히 세금을 물리는 것만으로 단기간에 이런 결과를 얻은 것은 아니었다. 변화의 핵심에는 ‘그린 정보기술(IT)’이 자리 잡고 있었다. 실시간으로 도로의 교통량을 체크하고 차량의 소유주를 자동 인식해 교통량에 따른 적정 세금을 부과하는 이 시스템은 그린 IT의 선두기업인 IBM이 설치했다.

평상시 10크로네(약 1800원) 정도지만 가장 혼잡한 출근 시간대에는 60크로네(약 1만 원)까지 세금을 물렸다. IBM 관계자는 “스톡홀름 교통시스템 개혁은 그린 IT가 많은 영역으로 확대 적용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했다.

조용우 기자 woogij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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