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통역 듣던 수단인 테러용의자 “모든 게 조작” 반박

  • 입력 2009년 1월 17일 02시 58분


9·11테러 및 알 카에다 연루 의혹자들을 다루는 특별군사법원의 전경. 관타나모 미 해군기지에 위치해 있다. 관타나모=하태원  특파원
9·11테러 및 알 카에다 연루 의혹자들을 다루는 특별군사법원의 전경. 관타나모 미 해군기지에 위치해 있다. 관타나모=하태원 특파원
韓 - 美 - 英 - 中 4개 언론 재판현장 공동취재

美 민간인 변호인단 불신… 인정신문도 거부

1시간가량 열띤 공방 끝에 날짜 못잡고 휴정

오바마 취임 앞두고 수감자들 단식투쟁 늘어

14일 오전 11시 쿠바에 있는 관타나모 미국 해군기지 군사법정 01-A.

피고대기실 문이 열리면서 누어 유트먼 무하마드 씨가 모습을 드러냈다. 무슬림 전통의 하얀 모자에 흰색 수감자 복장은 검은 피부와 구레나룻, 턱수염과 묘한 대조를 이뤘다. 재판장을 맡은 모이라 모젤루이스키(해군 대령) 군판사가 입장한 뒤 재판이 시작됐다. 영어를 알아듣지 못하는 무하마드 씨는 헤드폰을 쓴 채 동시통역을 통해 재판에 임했다.

그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알 카에다 조직원 교관으로 활동했고 오사마 빈라덴에게 팩스기기를 전달해 테러리스트들과 연락을 하는 것을 도운 혐의로 지난해 5월 기소됐다.

수단 국적인 그는 재판 초반부터 수단인을 변호사로 선임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구하는 등 미군과 민간인으로 구성된 변호인단에 대한 불신감을 드러냈다. 군 검찰의 범죄사실 낭독 및 사실인정 신문도 거부했다.

무하마드 씨는 오히려 “할 말이 있다”며 발언권을 신청한 뒤 “나는 무죄다. 모든 범죄 사실은 조작된 것”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재판은 한 시간 동안 진행된 뒤 다음 재판 기일을 잡지 못한 채 휴정됐다.

이에 앞서 동아일보와 영국의 더 타임스, 중국의 CCTV, 미국의 마이애미헤럴드 등 4개사 취재진은 13일 미 메릴랜드 주 앤드루 공군기지에서 비행기를 타고 3시간을 비행해 관타나모 해군기지에 도착했다.

미군 합동태스크포스(JTF) 공보팀은 취재진을 2002년 1월 첫 수감자 20명이 머물렀던 캠프 엑스레이로 안내했다.

가장 많을 때 200명까지 수감자가 머물렀던 이곳은 2002년 4월 이후 폐쇄돼 잡초만 무성했다. 현재 수감자들은 기지의 남쪽 해안에 위치한 캠프 델타 1∼3, 에코, 이구아나, 캠프 4∼7에 분산 수용돼 있다. 수감자를 분류하는 기준을 묻자 폴린 스토럼(해군 중령) 대변인은 “캠프 5, 6, 7에는 규칙을 잘 따르지 않는 사람들이, 규칙에 가장 잘 순응하는 수감자들은 캠프 4에 머문다”고 말했다.


2002년 1월, 9·11테러 및 알 카에다 연루 혐의자 20명을 처음으로 수감하기 시작한 뒤 그해 4월까지 운영되다 폐쇄된 캠프 엑스레이의 전경. 미군은 잡목이 무성하게 자란 이곳을 방문자들을 위한 ‘역사 현장’으로 활용하고 있다. 미군 합동태스크포스(JTF) 소속 병사가 수갑과 족쇄를 찬 채 식사를 받는 관타나모 수감자의 모습을 재현하고 있다(왼쪽 위 작은 사진). 관타나모=하태원 특파원

캠프 4에 수감된 사람들은 외부에서 체육활동이나 식사도 자유롭게 할 수 있다. 하지만 간수들에게 침이나 배설물을 투척하거나 구타를 하는 등의 행위로 ‘위험인물’로 분류되면 흰색 수감자복 대신 주황색 옷을 입혀 구별한다.

최근 이슈는 단식투쟁. 수용소 측은 3일 연속 식사를 거르면 단식투쟁으로 간주하는데 현재 248명 중 44명(17.7%)이 식사를 거부하고 있다. 2006년 6월 3명, 2007년 5월 1명의 수감자가 목을 매 자살하는 등 자해시도도 끊이지 않고 있다.

스토럼 대변인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이 코앞으로 다가왔고 최근 첫 수감자가 도착한 지 7년이 지났다는 점 등이 작용한 것 같다”고 말했다.

관타나모 수용소가 국제사회에서 미국에 의한 인권탄압의 상징으로 비치면서 오바마 당선인은 대선 과정에서 폐쇄를 공약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수용소 시설의 폐쇄가 확실해 보이지만 시설의 존치를 강변하는 저항도 만만치 않다.

미 국방부는 13일 관타나모 수용소에서 풀려난 테러 용의자 중 61명이 다시 테러활동에 가담하고 있다고 주장했고 14일에는 2002년 체포한 사우디아라비아인 2명과 알제리인 1명을 7년 만에 기소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정식 기소된 용의자는 22명밖에 안 되고 유죄판결이 확정된 용의자는 단 3명이다.

관타나모 기지에서 만난 미군 장병들은 임박한 폐쇄결정과 관련해 대부분 말을 아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장교는 “초법적 시설, 그리고 인권의 사각지대라는 오명을 썼던 수용소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뒤 내가 이곳에서 근무했다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관타나모(쿠바)=하태원 특파원 triplet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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