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세계 도시들]<상>런던

  • 동아일보
  • 입력 2008년 12월 26일 02시 57분



도심 누비는 전기車 “충전도 무료예요”

《기후 변화와 자원 고갈의 시대를 맞아 세계 도시들이 변모를 꾀하고 있다.

친환경 도시로 거듭나는 도시만이 미래에도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변화의 성공은 좋은 정책과 첨단 기술에만 달려 있는 것은 아니다.

미래에 대한 정확한 예측, 강력한 리더십, 시민의 적극적 참여가 없다면 도시의 변신은 ‘탁상공론’에 머무를 것이다.

영국 런던, 일본 도쿄, 호주 퍼스 등 시민과 과학자, 공무원이 함께 머리를 모아 환경 재앙에 대비하고 있는 ‘지혜로운 도시들’을 찾아 그들의 실험을 살펴본다.》

“탄소배출 줄이자” 2006년부터 ‘주스 포인트’ 운영

명물 ‘2층 버스’도 하이브리드-수소버스로 교체


뉴욕 파리 도쿄와 함께 4대 국제도시인 런던은 ‘교통왕국’으로 불릴 정도로 선진화된 교통체계를 도입하고 있다. 런던 도심 한복판에서는 지금 친환경 교통수단인 전기자동차가 오가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2012년 런던 올림픽 전까지 ‘더블데크’라고 불리는 런던 2층버스 8300대 중 상당수는 하이브리드 버스로 바뀌게 된다.

○ 전기차-하이브리드버스 전면 도입

18일 런던의 번화가인 소호지역에 자리한 맨체스터 광장. 차에서 내린 노라 슐츠(35·여) 씨가 인도 가장자리의 검은색 말뚝에서 노란색 전선을 꺼내 들었다. 이어 전기 기기를 전기콘센트에 연결하듯 플러그를 차에 꽂았다. 올해 초 이 전기차를 샀다는 슐츠 씨는 “주차비와 전기사용료를 내지 않는다”고 했다. 이 구역을 담당하는 한 주차요원은 “하루 평균 서너 대가 충전시설을 이용한다”고 말했다.

런던은 2006년부터 시내 곳곳에 전기자동차용 무료 충전시설인 ‘주스 포인트’를 도입했다. 현재까지 웨스트민스터 구와 캠던 구, 소호지역 등 시내 중심가 일원에 66개의 충전시설이 운영되고 있다. 전기자동차 운전자는 한 해 200파운드(약 40만 원)만 내면 주차비와 전기충전비를 감면받는다. 런던교통국(TfL)의 낸시 린 수석공보관은 “탄소배출을 줄이는 데 동참하는 운전자를 위한 배려”라며 “내년 중 충전시설을 도입하려는 자치구들에 지원금을 더 늘릴 계획”이라고 했다.

변화의 바람은 버스 지하철 항공 등 공공 교통체계 전반으로 확산되고 있다. 특유의 빨간색이 인상적인 시의 명물인 더블데크도 마찬가지. TfL은 360번과 141번 노선 등을 시작으로 시내에 하이브리드 버스를 전격 도입했다. 전기와 디젤을 연료로 번갈아 사용하는 이 버스는 소음과 진동이 적고 이산화탄소도 40%가량 덜 배출한다.

수소의 산화 환원과정에서 전기를 생산해 달리는 수소버스도 2010년 8대가 도입된다. TfL은 2012년 런던 올림픽이 열릴 때까지 하이브리드버스 300대를 도입하고 신규 도입 버스의 5%를 수소버스로 교체할 계획이다.

○ 지하철 보행 자전거 연계 대폭 확대

런던 시는 2007년 2월 기후변화 보고서를 발표하고 ‘저탄소’ ‘친환경’ 중심의 교통체계를 도입했다. TfL 환경 기후변화 담당관 헬렌 울스턴 씨는 “기후변화 주범인 탄소를 줄이고 시민이 자전거 버스 지하철을 더 자주 이용하도록 시 교통체계를 모두 연계해 뜯어고치고 있다”고 했다. 또 출퇴근, 통학 등 이용 목적별로 연계 노선, 보행 및 자전거 코스 등 정보를 상세히 제공하고 있다.

이런 노력은 최근 2년 새 눈에 띄는 변화를 가져왔다. 런던 시내 자전거 이용자는 2007년에 비해 올해 7% 이상 늘었다. 버스와 지하철 이용 승객도 11% 이상 증가했다. 반면 시민들의 자가용 이용 건수는 전년도에 비해 1% 떨어졌다.

○ “친환경 추진에 모두가 한마음”

친환경 차량 도입에 미온적인 다른 도시들과 달리 런던이 2년 만에 앞선 모델을 채택한 데는 정책가들의 강력한 의지와 과학계의 뒷받침, 세계에서 가장 앞선 도시 시민이라는 자부심이 삼박자를 이뤘기 때문이다.

시내 혼잡세 징수지역을 신설하는 등 적극적인 정책을 펼친 켄 리빙스턴 전 런던 시장의 뒤를 이어 5월 취임한 보리스 존슨 시장은 “2025년까지 런던의 탄소배출량을 60% 줄여 세계에서 가장 넓은 탄소배출 제한지역을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이를 위해 2500만 파운드(약 500억 원)를 집중 투자할 수 있는 ‘기후변화펀드’까지 마련했다. 울스턴 담당관은 “정책가 공무원 과학계가 너나 할 것 없이 친환경 정책 도입에 좀 더 속도를 내야 한다는 데 인식을 함께하고 있다”고 했다.

물론 시의 비전과 시민들의 이해가 상충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지난달 27일 런던 시는 혼잡세 징수구간을 런던 서부지역으로 확장하려는 시도를 철회했다. 주민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 67% 이상이 반대 의사를 나타냈기 때문.

린 수석공보관은 “앞선 정책이라도 추진 과정에서 시민의 강한 반대가 있으면 즉각 반영한다”며 “그러나 시민들의 이해를 구하기 위한 활동은 계속할 것”이라고 했다.

런던=박근태 동아사이언스 기자 kunt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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