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글로벌 금융개혁, 우리가 적임자”

  • 입력 2008년 11월 11일 02시 58분


진원지 美 휘청거리자 각국 주도권 경쟁

유럽 27국, IMF권한강화 등 개혁안 제시

브릭스 4국도 “들러리 사절” 목소리 키워

“이제는 게임의 룰을 바꿔야 한다. 우리는 적극적으로 글로벌 금융개혁에 나서기로 합의했다.”

7일 유럽연합(EU) 정상회의가 열린 벨기에 브뤼셀의 기자회견장. EU 의장국인 프랑스의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자신에 찬 목소리로 회의 결과를 내놨다. 15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EU가 제안할 국제금융개혁안에 대해 27개 회원국 모두가 합의했음을 발표하는 자리였다.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도 “기존 체제로는 현재 금융권을 통제하기 어렵다. 유럽이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고 거들었다.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도 “빠른 조치가 필요하다”며 한목소리를 냈다.

○ “우리가 주도권 잡아야”

글로벌 금융개혁을 앞두고 주도권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세계 금융권을 좌지우지해오던 미국의 영향력이 급속히 약해지면서 이를 대체할 세력 간 기 싸움이 한창이다.

가장 의욕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는 곳은 유럽. 문제의 진앙인 미국이 휘청거리는 사이 글로벌 주도권을 잡겠다는 것이다.

이날 비공식 회의에서 EU 정상들은 △국제통화기금(IMF) 권한 강화 △헤지펀드와 신용평가기관에 대한 감독 강화 △정보 시스템 구축을 통한 금융기관의 투명성 확보 △금융기관의 다자 규제 시스템 구축 등 개혁안을 도출했다. 또 100일간의 시한을 설정해 금융개혁을 신속하게 추진하자는 제안도 내놨다.

금융위기 직후 사르코지 대통령의 긴급 정상회의 소집, 브라운 총리의 ‘신(新)브레턴우즈 체제’ 제안 등이 잇따르면서 유럽의 행보에는 탄력이 붙은 상태.

미국이 대선 직후 권력 공백기에 있다는 점도 시기적으론 호재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당선인이 내년 1월 20일 취임 전까지는 전면에 나서지 않겠다는 방침인 데다 그가 최우선 과제로 내건 경제 회생 방안도 아직은 ‘미국’ 문제에 집중된 분위기다.

사르코지 대통령은 ‘미국의 권력 공백 때문에 G20의 정책 추진이 어렵지 않겠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지금 상황에서 내년 1월까지 기다릴 시간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 목소리 높이는 신흥국

아시아와 남미 주요국도 이 기회에 목소리를 높이기 위해 분주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경제력에 비해 국제 금융기구 내 지분이 적다는 불만 속에 역할 강화를 위한 대책 논의가 활발히 진행 중이다.

지난 주말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열린 G20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 회의는 이들 신흥국의 견해가 표출된 자리였다. 브라질 언론에 따르면 구이도 만테가 브라질 재무장관은 “(선진 주요국의 들러리로) 커피나 마시는 역할은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앞서 브릭스 국가인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은 따로 재무장관 회의를 열고 금융개혁에 한목소리를 내기로 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브라질은 선진7개국(G7) 회의와 G7 경제자문기구인 금융안정화포럼(FSF)을 확대해 신흥국의 역할을 늘려야 한다는 생각이다. 인도 역시 IMF 지분 확대를 꾀하고 있다.

중국은 아직 금융개혁에 신중한 편이지만 1조9000억 달러에 달하는 외환보유액을 무기로 선진국의 엔화 절상 요구 중단 및 무역시장 개방 등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

캐나다 토론토대 G20 리서치그룹의 제닐 거버트 수석 연구원은 워싱턴포스트에 “많은 개발도상국이 IMF나 세계은행 같은 국제 금융기관에서 목소리를 키우는 방향으로 금융체제를 개편하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브뤼셀=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2008 세계 금융위기 일지

△1월 11일: 뱅크오브아메리카, 모기지업체 컨트리와이드 인수

△3월 17일: JP모간, 베어스턴스 인수

△9월 7일: 미국 정부, 미국 양대 모기지업체 패니메이, 프레디맥 구제책발표

△9월 14일: 뱅크오브아메리카, 메릴린치 인수

△9월 15일: 리먼브러더스 파산보호 신청, 메릴린치, 뱅크오브아메리카에 인수

△9월 16일: 미 연방제도이사회(FRB), AIG에 850억 달러 구제금융

△9월 19일: 미국 정부, 7000억 달러 구제금융안 발표

△10월 3일: 미국 의회, 7000억 달러 구제금융안 통과

△10월 12일: ‘유로존 15개국+영국’긴급 정상회의

△10월 15일: 유럽연합(EU) 정상회의

△11월 7일: G20 재무장관 및 중앙은행 총재 회의

△11월 15일: G20 정상회의(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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