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경-언어 뛰어넘어 세계와 소통한 세계인”

  • 동아일보
  • 입력 2008년 10월 10일 02시 54분



2008년 노벨문학상에 프랑스 작가 르클레지오
1963년 데뷔… 亞-멕시코 돌며 불교-인디언 심취
김치-비빔밥 즐기는 ‘지한파’… 작년 이대서 강의


프랑스의 대표적인 작가 장마리 귀스타브 르클레지오(68·사진) 씨가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스웨덴 한림원은 9일 오후 “르클레지오 씨는 인간성에 대한 탐구와 관능적 환희, 시적인 모험이 가득한 새로운 출발의 작가”라며 선정 이유를 밝혔다.

1963년 프랑스 르노도상을 받은 데뷔작 ‘조서’와 아카데미 프랑세즈 소설상을 받은 ‘사막’을 비롯해 ‘홍수’ ‘성스러운 세 도시’ ‘혁명’이 대표작이다. 한림원은 특히 ‘사막’이 “이민자들의 눈에 비친 북아프리카 사막의 잃어버린 문화가 잘 그려졌다”고 평가했다.

서구 출신인데도 비서구적이고 친자연적인 작품 세계에 천착한 그는 2001년 방한해 전남 화순군 운주사를 둘러본 감흥을 담은 시 ‘운주사, 가을비’를 썼다. ‘고요하고 정겨운/인사동의 아침/광주 예술인의 거리…번데기 익는 냄새/김치/우동 미역국/고사리나물/얼얼한 해파리 냉채/심연에서 솟아난 이 땅엔/에테르 맛이 난다’(‘운주사, 가을비’ 중에서)

지난해에는 이화여대 초빙교수로 1년간 학부 및 대학원 강의를 했으며 김치 비빔밥 만둣국 등 한국 음식도 즐긴다. 수상 상금으로 1000만 크로나(약 19억 원)를 받으며 시상식은 12월 10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열린다.

○ 서구를 벗어난 세계인

르클레지오 씨가 좋아하는 한국 작가로 꼽아 서로 교분을 나눈 이승우 씨는 “그는 국경과 언어, 문화의 장벽을 뛰어넘어 세계와 소통한 세계인”이라고 평했다.

오랫동안 노벨 문학상의 유력 후보로 거론돼 온 그는 프랑스 문단을 대표하는 작가로 각광받으면서도 언제나 서구와 결별한 타자로서의 삶을 유지했다. 2001년 처음 방한했을 때 “서구는 기독교 문명에 바탕을 둔 가치를 어디에나 기준처럼 적용하지만, 세상에는 그것 이외에도 다양한 가치와 자유가 존재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1940년 프랑스 니스에서 영국인 아버지와 프랑스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영어와 프랑스어를 자유롭게 구사했으나 영국이 그의 조상이 살았던 아프리카 모리셔스 섬을 식민지화하려는 것에 반감을 느껴 프랑스어로만 글을 써왔다.

‘조서’로 문단에 화려하게 데뷔했지만 그는 프랑스 사교계에 무관심했다. ‘비유럽인’을 자처했던 그는 “내 국적은 모리셔스 섬”이라고 말하곤 했다. 1966년 이후 태국 멕시코 파나마 등에 머물며 불교와 선의 세계, 인디언의 삶에 빠져들었다.

그의 작품 세계는 서구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는 한편 친자연적인 경향을 보였다. 그의 소설은 철학 에세이나 종교적 성찰, 심지어 주술사의 신들린 넋두리와 닮았으며, 이는 현대 사회에 맞서 약자와 피지배자를 대변하는 방식이었다.

최수철 한신대 문예창작과 교수는 “초기 실존주의적인 글쓰기에 주력했던 작가는 인간이 지닌 삶의 부조리에 내면의 정직함과 의식의 냉철함으로 줄곧 맞섰다”고 평했다.

국내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던 작품으로는 ‘홍수’(1966년)를 꼽을 수 있다. 남진우 문학평론가는 “이 작품을 통해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현대 프랑스문학과 그 철학적 사유에 입문한 한국 작가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 각별한 한국과의 인연…비빔밥, 만둣국 즐겨

르클레지오 씨는 올해 9월 말에도 제주도와 진도를 돌아본 뒤 6일 파리로 떠났다. 그는 한국 문화에 인간미가 넘친다며 애정을 표시하곤 했다. 한글의 기본적인 단어도 읽고 쓸 수 있다. 소설가 황석영 이승우 씨 등 국내 작가들과의 교류도 잦았으며 박찬욱 감독 등을 인터뷰할 만큼 한국 영화에도 관심이 컸다.

이화여대 통번역 원장인 김용숙 교수는 “한국에 있으면 집처럼 마음이 편하고 아늑하다고 말하곤 했다”면서 “학교 인근 식당에서 음식을 즐기며 길거리 리어카에서 과일을 사 드시는 걸 좋아할 정도로 소박한 분”이라고 말했다.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박선희 기자 teller@donga.com

○ 르클레지오는…

△1940년 4월 13일 프랑스 니스 출생 △1960년 니스대 졸업한 뒤 영국 브리스틀대 유학 △1963년 첫 소설 ‘조서’ △1966∼1967년 태국 방콕에서 군 복무 △1967년 멕시코에 체류해 인디언들의 삶 체험 △1969∼1973년 파나마 체류 △1980년 아카데미 프랑세즈가 주는 폴 모랑 상 수상 △1994년 프랑스 잡지 ‘리르’에서 ‘생존 프랑스 작가 중 가장 위대한 작가’로 선정 △2007∼2008년 이화여대 강의 △저서 ‘홍수’(1966) ‘도피의 서’(1969) ‘전쟁’(1970) ‘거인들’(1973) ‘저편으로의 여행’(1975) ‘몽도, 그리고 또 다른 이야기들’(1978) ‘금광을 찾는 사람’(1988) ‘디에고와 프라다’(1993) ‘황금 물고기’(1997) ‘혁명’(2003) ‘아프리카인’(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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