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오르는 중국…통제할 공룡인가, 협력할 친구인가

  • 입력 2008년 8월 16일 02시 59분


■ 美, 올림픽 계기로 활발한 토론

"요즘 퇴근하면 채널 4번이나 80번을 틀게 된다. 지난 주말 광대한 규모의 개회식을 보면서 느꼈던 경계심은 차츰 사라지고 '중국이 참 대단해졌구나'라는 생각이 반복해서 찾아온다."

미국 행정부에서 동북아 문제를 담당했던 한 전직 관리는 14일 기자에게 베이징 올림픽을 보는 소회를 털어놓았다. 채널 4와 80은 미국에서 이번 올림픽을 독점중계하는 NBC방송의 워싱턴 지역 채널.

그는 "며칠 전 동료들과 이번 올림픽을 베를린 올림픽과 도쿄올림픽, 서울올림픽 중 어느쪽과 비유해야 하는지를 놓고 토론을 했다"고 전했다.

나치 제국의 앞길을 닦았던 히틀러 시대 베를린올림픽처럼 베이징 올림픽이 '위협적 공룡'의 도래를 예고하는 것인지, 제2차 세계대전이후 성공신화의 상징인 도쿄올림픽과 서울올림픽처럼 올림픽 자체가 동력이 돼 발전과 변화를 가져올 것인지 전망이 갈렸다는 설명이다.

'중국의 부상(浮上)'을 웅변하는 올림픽을 지켜보면서 워싱턴에선 '슈퍼 차이나'의 도래를 어떻게 바라봐야하는지, 미국의 대응전략은 무엇인지를 놓고 활발한 토론이 벌어지고 있다.

▽대비되는 두 시각의 공존= 조지워싱턴대 박윤식 교수는 "중국은 이번 올림픽을 통해 전세계에 '피스풀 라이즈'(peaceful rise)'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하는 것 같지만 미국 오피니언 리더들 가운데는 회의적인 시각이 좀 더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즉 미국내에선 "지금은 중국이 서방의 협력을 필요로 하니까 평화와 협력의 메시지를 강조하지만 경제력과 군사력이 서방과 대등해진 후에도 그럴까"라는 의구심이 많다는 설명이다.

미 행정부의 한 관리는 "'중국은 경제 발전을 토대로 정치, 인권에서도 점점 나아질 것이므로 중국하고 계속 긴밀한 협력을 해야한다'는 시각과 '중국 정치체제의 특성상 정책이 어떻게 바뀔지 신뢰할 수 없으며, 중국이 커질수록 점점 더 통제하기 힘든 '잠재적 위협'이 될 것이므로 중국의 변화를 도모해야 한다'는 시각이 상존한다"고 전했다.

한 외교전문가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취임 당시만해도 '중국과는 전략적 라이벌 관계'라고 규정하며 전임 빌 클린턴 행정부의 '중국과의 전략적 파트너십' 정책을 비판했다"며 "하지만 실제론 부시 행정부 7년간은 그 어느때보다도 양국 지도부간에 우호적 협력 관계가 이어진 기간으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헨리 폴슨 미 재무장관은 곧 발간될 포린어페어스 9,10월호 기고문에서 "중국은 통제되고 반격되어야 하는 위협이란 시각과 중국의 성장은 미국 경제에도 기회라는 시각이 공존하지만 미국에 유일한 성공의 길은 협력 정책"이라고 단언했다.

폴슨 장관은 이어 "중국의 경제문제 해결은 미국의 경제적 강세에도 필수적이며 '중국이 미국을 먹어치울 것'이란 걱정 대신 중국이 핵심적 개혁을 하지 않거나 심대한 경제적 어려움에 처하는 상황을 걱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부시 행정부의 중국과의 협력 기조는 한때 행정부 요직을 장악했던 네오콘(신보수주의) 그룹에는 불만의 대상이다. 네오콘들은 "소련 해체 이후 러시아가 미국의 맞수가 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중국의 정치체제 특성상 21세기 미국의 잠재적 최대 적국은 결국 중국"이라는 시각에서 '중국 위협론'을 확산시켜왔다.

▽중국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다니엘 킬맨(프린스턴대 박사과정) 전 전략국제문제연구소 객원연구원은 최근 발표문에서 "중국이 국제시스템에 더 의존적이 되면 시스템을 지배하는 기존 규율을 존중하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라며 '묶어두기(binding)'를 핵심전략으로 제시했다.

미국이 전후 일본과의 동맹을 공고히 하고 민주제도를 착근시킴으로서 예측가능하고 우호적이며 내부 접근이 가능한 우방으로 만들었듯이, 중국도 국제시스템내로 결합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킬맨 연구원은 "물론 중국은 일본과 달리 폐쇄적 정치시스템으로 인해 예측 가능성이 떨어지고 지도부의 의중을 읽는게 어렵다"며 중국 언론인들을 위한 국제컨퍼런스 개최 등 간접적인 방법으로 중국의 언론자유를 장려해 중국 내부의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고 권고했다.

폴슨 재무장관도 "2006년부터 시작된 미중 전략경제대화(SED)의 성공은 수뇌부, 각료급들 사이의 빈번하고 긴밀한 대화에 의해 가능했다"며 "미중 관계는 공고한 협력과 다자·양자간 강제를 통한 분쟁해결 외엔 방법이 없다. 처벌적 입법은 미국 경제에도 해악을 끼칠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은 어느 정도 위협이 될까= 동북아 안보 전문가인 조너선 폴락 미 해군대 교수는 최근 세미나에서 "중국의 급부상에 대해 '장차 군사적 대결을 포함한 미국에 도전이 될 것'이란 비관적 전망에서부터, '공동의 경제적 이익과 선린관계에 대한 지도자들의 다짐에 의해 희망적인 미래가 펼쳐질 것'이란 전망까지 스펙트럼이 넓다"고 소개했다.

폴락 교수는 이어 "각자가 방위계획을 세우는 과정에서 잠재적 대결상황에 초점을 맞춰 준비하는 관료적 프로세스에 의해 긴장이 고조될 가능성은 있지만 대결적 상황이 불가피한 것은 아니다"고 내다봤다.

한 외교전문가는 "미국내에서 중국이 미국의 동북아 지역 접근을 봉쇄할 위협으로 보는 시각은 많이 바뀌고 있다"며 "중국이 군사력 증강에 막대한 재정을 투입하고 있지만 막상 방대한 군대를 움직일 동력이 많지 않다는 점, 그리고 중국 지도부의 최우선 관심사는 경제성장과 내부 결속이란 점이 인식되면서 워싱턴내에서 중국의 군사력 증강에 대한 우려도 줄어드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맬컴 리프킨드 전 영국 외무장관은 텔레그래프지 기고문에서 "중국의 안정적 이행은 미국의 이익에도 부합된다"며 "미국이 장기적으로 중국을 가장 강한 라이벌로 보는 건 맞지만 앞으로 적어도 한 세대 이상은 중국이 금메달 위치에 오르지는 못할 것이다"고 내다봤다.

하지만 워싱턴은 절대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 분위기다. 워싱턴의 한 외교전문가는 "미국은 중국을 상대로 '동맹'(ally)이란 표현을 절대 쓰지 않는다"며 "미 국무부 부장관과 중국 외교부 부부장간의 정기 회동을 중국은 '전략대화'라고 표현하지만 미 행정부는 '고위급 대화'(senior dialogue)라고만 표현한다"고 소개했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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