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러 고래싸움 “小國은 서러워”

  • 입력 2008년 5월 21일 03시 14분


“어제 러시아에 한 방 맞은 나라는 그루지야, 오늘 미국에 따끔한 맛을 본 나라는 벨로루시…. 내일은 어느 나라가 혼이 날까.” 최근 미국 러시아 등 강대국과 동유럽 소국(小國)들의 외교 분쟁을 지켜본 모스크바 주재 외교관마다 입에 올리는 얘기다.

우크라이나 벨로루시 그루지야 등 동유럽 소국들이 1991년 옛 소련에서 분리 독립한 뒤부터 미국 러시아 양국은 이들 국가와 크고 작은 마찰을 빚어왔다.

그러나 지금은 양상이 다르다. 미국 러시아 양국이 거의 날마다 소국들과 분쟁을 일으키는 바람에 지역 정세가 험악해지고 있다.

올 4월 그루지야에 무역 및 교통 제재 조치를 풀었던 러시아는 7일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대통령 취임 이후 이 나라를 다시 옥죄고 있다.

러시아는 그루지야 내 자치지역인 압하지야에 살고 있는 러시아인들을 보호한다며 이 지역 평화유지군 규모를 2배 이상 늘렸다고 일간지 모스크바타임스가 전했다. 러시아가 무장 병력 배치를 늘린 이후 양국의 긴장은 날마다 증폭되고 있다. 이에 앞서 미국은 지난 주말 벨로루시 굴지의 석유회사 라코크라스카 등 3개 회사에 대해 금융제재에 들어갔다고 AP통신이 전했다.

이는 3월 미국이 벨로루시 정치범 석방을 요구하자 벨로루시가 미국 외교관 10명을 민스크 주재 미국대사관에서 추방한 데 대한 보복 조치로 분석된다. 그루지야와 벨로루시에 대한 미국 러시아 양국의 대응은 외교적 설전(舌戰)이 실력 행사로 옮겨지는 ‘시범 케이스’라는 관측이 나온다.

러시아 정치 평론가 알렉산드르 슈멜레프 씨는 “최근 경제 성장으로 힘을 키운 러시아가 대외 정책을 강경 노선으로 바꾸는 것은 우연이 아니며 미국의 조지 W 부시 행정부도 이에 뒤질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미국 러시아 정부가 만만한 동유럽 소국을 ‘힘자랑’의 희생양으로 삼는다는 얘기도 들린다. 평론가 유리 기렌코 씨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등장 이후 부시 행정부의 외교력은 동유럽에서 급속히 쇠락했다”며 “미국이 벨로루시와 우크라이나에 매달리는 것은 부시 행정부 말기의 세력 만회 전략”이라고 분석했다.

모스크바=정위용 특파원 viyon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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