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훼손-비방 댓글 온상”… 美, 익명 가십 사이트 보이콧

  • 입력 2008년 5월 6일 03시 00분


'○○○는 신경성 무식욕증에 걸렸다' '○○가 성병을 옮기고 다닌다'….

미국 프린스턴대에 다니는 멜리사(20·여) 씨는 종종 주시캠퍼스(juicycampus.com)라는 웹사이트에 들어가곤 했다. 관심 있는 대학 이름을 쳐 넣으면 그 대학 주변의 온갖 가십들을 읽을 수 있다.

어느 날 그는 사이트에 자기 이름이 올라와 있는 것을 발견했다. 누군가 익명으로 '멜리사가 친구들을 중상모략하고 다닌다'는 글을 올린 것.

사이트 관리자에게 이 글을 지워달라고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 그때야 인터넷 익명세계의 파괴성을 절감한 멜리사 씨는 비즈니스위크 최신호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름이 올라오는 순간 사형선고를 받는 거나 마찬가지예요. 처음엔 '원래 그런 형편없는 사이트'라고 치부해버리려 했어요. 하지만 온라인상에 기록으로 몇 년 이상 남을 텐데, 취업하려는 회사의 인사담당자가 우연히 보면 어쩌나 하는 걱정까지 들었어요."

최근 이처럼 미국에서 익명으로 글을 올릴 수 있는 웹사이트가 급증하면서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터프대 대학신문인 터프데일리 최근호는 "과거엔 낙서 형태의 메모나 식당에서의 잡담을 통해 가십이 전달됐지만 요즘은 웹사이트들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고 전했다.

비즈니스위크는 인터넷에 누군가 자신의 성적 취향에 대한 헛소문과 주소를 띄워놓는 바람에 '이상한' 남자들이 집까지 찾아오는 피해를 본 여성도 있다고 보도했다.

2006년 10월 미주리주의 메간 마이어라는 13세 소녀는 친구 맺기 사이트인 '마이스페이스'에서 사귄 조시 에반스라는 16세 소년으로부터 '모욕적인 절교'를 통보받은뒤 자살했다. 그러나 경찰수사 결과 에반스는 실존인물이 아니라 마이어 양의 친구 어머니가 만든 가짜 프로파일로 드러났다.

익명 댓글로 인한 명예훼손과 비방 논란이 확산되자 뉴저지 주 검찰은 최근 주시캠퍼스에 대해 조사를 벌였다. 코네티컷, 캘리포니아 주 등도 대책을 검토 중이다. 하지만 사이트 관리자들은 법률상 책임이 없다고 항변하고 있다.

과거 익명으로 글을 올릴 수 있는 사이트들이 많지 않았을때는 수사당국이 필요할 경우 사이트 관리자의 협조를 받아 글을 올린 사람의 신원을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수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이트가 익명의 글을 허용하고 있으며 그중 상당수는 방문자의 신원에 대한 기록을 오래 보관하지 않는다.

대학가에선 이 같은 현실을 변화시키려는 소비자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프린스턴대의 코너 디에먼드유먼 씨는 익명 가십 사이트 보이콧 캠페인에 나섰다. 사이트 방문을 거부해 광고에 의존하는 이들 사이트에 타격을 주는 방식이다. 서명을 받기 시작한지 한 달여 만에 1000명가량이 참여했다.

그는 비즈니스위크 인터뷰에서 "우리 세대가 커뮤니케이션을 바라보는 방식을 바꾸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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