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송평인]톨레랑스마저 사라진 佛파업

  • 입력 2007년 11월 22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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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프랑스 파업 사태에서 나타난 학생들의 반민주적인 학교 봉쇄와 철도 노조원들의 명분 없는 파업 강행은 프랑스라는 국가의 수준을 의심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14일 기자가 찾은 파리4(소르본)대학 앞에서는 학생 서너 명이 출입구를 가로막고 있었다.

한 여학생에게 “들어가게 비켜 달라”고 부탁하자 “문이 봉쇄됐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왜 봉쇄하느냐”고 물으니까 “대학 개혁법에 반대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주변을 둘러보니 봉쇄파 학생들이 이곳저곳에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군사정권하의 1980년대 한국에서도 대학생들은 종종 수업을 거부했다. 그러나 굳이 수업에 들어가는 학생을 막지는 않았고 교수도 강의를 진행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수업 거부’가 아니라 모든 이를 대학 캠퍼스에 못 들어가게 하는 ‘봉쇄’가 벌어지고 있었다.

게다가 소르본대는 학생들이 총회에서 봉쇄를 결의한 적도 없었다.

렌2대학에서는 학생 총회에서 봉쇄 반대가 결의됐는데도 일부 학생이 학교를 무단으로 봉쇄하려다 총장이 지원을 요청한 경찰에 쫓겨나기도 했다.

이 학교 마르크 공타르 총장은 지난주 주간 누벨 옵세르바퇴르와의 인터뷰에서 쇠몽둥이와 야구방망이로 무장한 채 학교 봉쇄에 나선 학생들의 행동을 ‘테러리스트’에 비유했다.

16일 본보가 인터뷰한 장샤를 포므롤 파리6(피에르 앤드 마리퀴리)대학 총장도 “봉쇄는 트로츠키주의자나 무정부주의자 같은 소수의 학생이 주도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20일 파리 몽파르나스역 인근에서는 24시간 파업에 들어간 공무원 교사들이 임금 인상 등을 외치며 대대적인 시위를 벌였다. 일간 ‘뤼마니테’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날 공무원 파업에 대해서는 응답자 중 53%가 지지를 보냈다. 공무원이 경제활동인구 5명 중 1명을 차지하는 나라여서 주변에 공무원 친척이나 친구를 가지지 않은 사람이 거의 없다는 것도 이유일 것이다. 그러나 프랑스 국민이 본래 ‘거리의 투쟁’을 쉽게 받아들이는 편임에도 불구하고 철도원의 파업에 대해서는 유독 70% 가까이가 반대 의사를 나타내고 있다.

21일 철도원들은 파업 참가율이 20%대로 떨어지자 업무방해(sabotage)라는 극단적 행위에 나섰다. 누군가 고속철(TGV) 철로에 사용되는 케이블과 전철 포인트에 불을 놓아 고속철 운행이 최대 3시간 늦어졌다. 이날은 노조가 정부와 협상에 들어가기로 한 날이다.

18일 파리 레퓌블리크 광장의 파업 반대 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은 ‘철도원은 이기주의자’라고 외쳤다. 누구를 이기주의자라고 부르는 것은 프랑스에서 ‘정색하고’ 하는 비난에 해당된다. 이웃 나라인 영국이라면 ‘개인의 이기심도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결국 사회 전체의 이익에 기여한다’는 생각이 통하지만 프랑스에서는 어림없는 얘기다.

프랑스는 ‘연대’라는 가치를 중시하는 사회다. 그래서 누군가 파업을 해도 ‘어려운 사정이 있겠거니’ 하고 용인하는 것이 대체적인 사회 분위기였다. 또한 프랑스인은 ‘동정심이 많다(sympa)’는 말로 남을 칭찬하기를 좋아한다. 멀쩡한 사람이 지하철에 올라타 뻔한 소리를 늘어놓으며 구걸을 해도 동전을 쥐여 주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에게서 철도원들이 이기적이라는 비난을 듣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프랑스도 인내의 한계를 뛰어넘는 집단이기주의에 염증을 느끼기 시작한 것 같다. 니콜라 사르코지 대통령은 이를 변화의 동력 중 하나로 삼고 있다. 프랑스가 과연 집단이기주의를 넘어 변화를 이룰 수 있을지 주목된다.

송평인 파리 특파원 pis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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