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만으로 통화’ 처음 허용 탈레반 “대면협상” 적극적 신호

  • 입력 2007년 8월 6일 03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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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대사관-피랍자 전화통화 의미는

한국인 인질 가운데 3명이 5일 아프가니스탄 주재 한국대사와 전화 통화를 한 것이 피랍 사건 이후 중대한 국면 전환의 분수령이 될지 주목된다.

인질 석방 협상에 나선 한국 정부가 피랍 사건 17일 만에 처음으로 일부 인질의 상태를 직접 확인한 것은 의미 있는 진전임에 틀림없다. 정부가 이들의 억류 상황과 건강 상태 등을 직접 파악한 것은 탈레반 측과의 협상 전략 수립에 상당한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탈레반 측은 이날 통화를 허용함으로써 한국 정부와의 협상에 성의를 보인 셈이다.

▽정부 직접 통화의 의미=5일 이뤄진 인질과 한국대사관 측의 직접 통화는 그동안 인질들이 몇몇 언론과 통화한 것과는 여러 가지로 의미가 다르다.

인질과 외신 간 통화는 현지어와 영어, 한국어를 섞어서 한 게 대부분이다. 이는 탈레반이 자신들의 의사가 제대로 전달되는지 ‘감시’해 왔다는 얘기다. 하지만 이번 통화는 한국어만으로 이뤄져 피랍자들이 한국 정부 관계자에게 더 정확하게 자신들의 상황을 전달했을 것으로 보인다.

여성 인질과의 통화가 20여 분간 비교적 긴 시간 이뤄진 것도 눈길을 끄는 대목이다. 인질들은 자신들의 건강 상태와 탈레반의 감시 상황 등 세세한 얘기를 우리 정부에 직접 전달할 수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물라 사비르 가즈니 주 탈레반 사령관은 “나도 그들이 어떤 말을 했는지 전체를 다 알지는 못한다”고 본보 통신원인 아미눌라 칸(가명) 씨에게 말했다. 이는 통화가 탈레반의 감시나 간섭 없이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이뤄졌음을 뒷받침한다.

상태가 심각할 정도로 아프다는 여성 2명 가운데 1명이 통화를 했다는 사실도 눈길을 끈다. 이 여성 인질의 이름은 확인되지 않았다. 칸 씨는 “사비르에게 통화를 한 사람들과 아픈 여성의 이름을 물어보았지만 사비르는 ‘이름을 발음하기 너무 어려워 기억하지 못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왜 통화 허용했나?=무엇보다 탈레반 측이 한국 정부에 일종의 신뢰 구축을 위한 적극적인 신호를 보낸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탈레반이 통화 내용을 감시할 수 없는 한국어 통화를 허용한 것은 한국 정부가 자신들과의 직접 대면협상에 나서도록 하기 위한 일종의 유인책으로 보인다.

탈레반의 이 같은 유화적인 태도는 인질 2명 살해 뒤 악화된 국제사회의 여론에 부담을 느꼈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인질 살해라는 극단적 압박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요구하는 탈레반 수감자 석방은 이뤄지지 않았고, 오히려 탈레반에 대한 비난만 거세졌기 때문이다.

또 아프간 정부와 현지 미군이 탈레반에 대한 추적을 강화하는 상황에서 사태 장기화가 자신들에게 유리하지 않을 것으로 보고 국면 전환을 모색하려 했을 수도 있다. 한국 정부와 직접 대면협상을 통해 사태를 매듭짓는 게 나을 수 있다는 전략적 판단을 내리고 일정 수준의 상호 신뢰를 쌓기 위한 제스처를 먼저 취한 것일 수 있다는 얘기다.

이번 사태 발생 이후 조심스러운 태도를 취해 온 정부가 이번 통화에 대해 “어떤 접촉이든 정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평가한 것도 탈레반과의 협상 분위기가 조성돼 가고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이번 조치가 고도의 심리전일 가능성도 없지 않다. 탈레반이 통화를 주선한 반면 인질 추가 살해 위협을 하는 상반된 태도를 보인 것도 이런 관측을 뒷받침한다. 따라서 탈레반의 정확한 의도를 파악하려면 신중히 대응하는 게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김영식 기자 spear@donga.com

하태원 기자 triplets@donga.com

[화보]한국인 피랍 살해…아프간 가즈니주 현지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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