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월외교]“反美” 외치는 바킹 외교

  • 입력 2007년 7월 14일 03시 01분


코멘트
토니 블레어,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친미 행보와는 대조적으로 지난 수년간 입만 열면 미국을 비판하며 대미 자주를 강조한 지도자도 여러 명 있었다. 워싱턴의 한 싱크탱크 연구원은 이를 두고 “푸들 외교와 대비되는 ‘짖는(barking) 외교’가 유행처럼 번졌다”고 비유했다. 스티븐 헬퍼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이런 ‘짖는 외교’를 “국익과 안보를 위해 실제로는 긴밀한 동맹 정책을 취하면서도 국내적으론 반미 정서를 감안할 수밖에 없는 외교 행위의 다면적 속성을 보여 주는 현상”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지도자가 자국 내의 반미 정서를 이유로 공격적 어휘를 동원할 경우 상대국 여론 주도층의 자존심에 상처를 입힐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했다.

마이클 리딘 미국기업연구소(AEI) 연구원은 재선을 위해 격렬한 반미 캠페인을 벌인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독일 총리를 사례로 들었다.

“그가 현명한 정치인이었다면 미국 측에 ‘앞으로 수개월간 안 좋은 소리가 많이 들릴 텐데 국내 정치 때문이니 이해해 달라’고 귀띔했을 것이다. 그러지 않음으로써 그는 워싱턴 여론 주도층의 마음을 잃어버렸다.”

크리스토퍼 힐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푸들 외교든 짖는 외교든 한 방향으로만 치우치면 실패하기 쉽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한미관계에 대해선 이라크 파병,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등의 협력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 전해지는 반미 시위와 일부 정치인의 자극적인 말이 불필요한 상처를 입힌 측면이 있다고 진단했다.

박윤식 조지워싱턴대 교수는 “양국 정부는 동맹에 문제가 없다고 말하지만 사석에서 지한파 인사들을 만나면 한국에 대한 호감도가 크게 줄어든 걸 실감하게 된다”고 말했다.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연구원은 “노무현 정부 임기 초에는 덜 믿을 만한 동맹이라는 인식이 많이 퍼졌고 그동안 몇 차례 발언으로 워싱턴이 충격을 받았지만 이제는 이미 상처 입을 건 다 입어서 더 나빠질 것도 없다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외교 소식통들은 상처 입은 동맹관계로 인한 구체적 손실 사례를 몇 가지 들었다.

美 무기 팔 때 일본보다 비싸게 받아

“한국은 미국제 무기를 일본보다 비싸게 사고 있습니다. 이를 바로잡고 각종 현안에 대한 우호적 분위기 조성을 위해 미국 의회를 상대로 한 로비가 필요합니다.”

이태식 주미 대사는 2005년 12월 서울의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앞으로 이 같은 내용의 서한을 보내 로비 예산 10억 원의 차질 없는 배정을 요청했다.

미국은 무기를 판매할 때 나라별로 등급을 정해 조건을 달리 적용한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 일본, 호주 등이 최상등급이며 한국은 이들보다 구매 조건이 떨어진다. 무기 구입 비용을 분납할 때 적용하는 할부금리(APR)가 최상등급 나라보다 0.5%포인트가량 높다는 것.

정부는 이를 시정하기 위해 ‘대미 무기구매 조건 개선’ 프로젝트를 추진했으나 결국 중간에 그만둔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는 11일 “알아보니 일본, 호주와 비교할 때 부품 공급 개수 및 교육 훈련의 강도가 높아 꼭 조건이 나쁘다고만 볼 수는 없어 그만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다른 관계자는 “무기구매 조건을 바꾸려면 미 의회를 통해 미국 국내법 개정을 추진해야 하는데 그 작업이 워낙 방대한 것으로 파악됐다”고 설명했다. 한국에 대한 분위기가 그리 우호적이지 못해 프로젝트를 추진하기 어려웠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美 공무원 연수단 일본에만 보내

워싱턴의 싱크탱크인 맨스필드재단은 해마다 미 의회의 지원으로 미국 공무원 10명을 뽑아 일본 정부 내에서 1년간 함께 근무하도록 한다. 지일파 네트워크를 확대 재생산하는 프로그램이다.

지한파인 고든 플레이크 재단 사무총장은 이 프로그램을 한국에도 적용하고 싶었지만 포기하고 말았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예산을 따내려면 의회에서 적극적으로 한미관계의 중요성을 역설해 줄 친한파 의원들이 있어야 하는데, 누굴 찾아가서 부탁해야 할지 비빌 언덕이 떠오르지 않았다.”

워싱턴=김승련 특파원 srkim@donga.com

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