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대선후보 검증 과정은―현지 전문가 7인 인터뷰

  • 입력 2007년 7월 7일 03시 06분


《2008년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미국에서도 대선 열기가 고조되고 있다. 정권 교체를 추진하는 민주당 후보들 간의 경쟁은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고 공화당 후보들의 경선도 점차 달아오르는 양상이다. 그럼에도 미국 대선은 이전투구(泥田鬪狗) 양상을 보이는 한국과는 여러모로 다른 점이 많다. 내년 1월 예비경선을 앞둔 미 대선후보 경선 레이스의 특징을 미국 내 전문가들과의 전화 인터뷰로 살펴봤다. 제럴드 마라 조지타운대 인문과학대학원 부학장, 윌리엄 가드너 뉴햄프셔 주 국무장관, 고든 플레이크 맨스필드재단 사무총장, 박윤식 조지워싱턴대, 신기욱 스탠퍼드대, 민병갑 뉴욕퀸스대 교수, 김동석 뉴욕·뉴저지 유권자센터 소장이 도움말을 줬다.》

“후보간 대결, 불꽃 튀지만 피는 튀기지 않는다”

○ 한국과는 다른 미국 대선

‘1위와의 지지율 격차는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다. 하지만 상대의 약점이 보이지 않는 건 아니다…. 스캔들로 점철된 가정생활, 특정 지역 자본과의 유착, 악명 높은 대기업의 사외이사….’

‘1위 자리가 불안하다. 그러나 상대는 능력을 검증받은 게 없고, 젊은 시절을 둘러싼 안 좋은 소문도 들린다. 땅을 특혜로 구매한 의혹도 있다는데….’

민주당 경선레이스에서 선두다툼을 벌이는 버락 오바마 의원과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 진영의 속내를 가상한 것이다.

한국적인 관점에선 두 후보의 공방이 상호 ‘때리기’ 양상으로 전개될 것 같지만 실제론 다르다. 정책 노선과 국정 능력을 놓고 치열한 공방을 벌여도 상대의 신상을 공격하지는 않는다. 후보 간의 검증 논란도 없다.

○ ‘신상 공격은 좋지 못한 일’ 인식

‘힐러리 클린턴(민주·펀자브).’ 이번 대선 레이스에서 ‘저질 선거운동 제1호’의 불명예는 이 짤막한 암호 같은 메모를 작성한 오바마 진영에 돌아갔다.

한 선거참모가 쓴 이 메모는 힐러리 의원 부부가 인도에 투자하는 것을 겨냥한 것. 펀자브(인도의 한 지명)를 대변하는 민주당 의원이라는 비아냥거림이었다.

메모엔 미국인의 일자리를 인도로 옮긴 시스코사에서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강연료 30만 달러를 받았다는 내용도 들어 있었다. 언론이 이 문제를 부각해 주길 기대하고 기자들에게 흘린 것.

그러나 이 메모는 오히려 오바마 의원에게 상처를 줬다. 입으론 ‘새 정치’를 강조하면서 네거티브 캠페인을 벌인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오마바 의원은 나흘 뒤 “정말 멍청하고 저속한 행동이었다. 몰랐지만 내 책임이며 참모들에게 잘못을 분명히 지적했다”고 사과했다.

마라 부학장은 “상대의 정책보다 도덕성을 공격하고 싶은 욕구는 역사상 어느 때나 있었고 미국도 예외는 아니다”라며 “하지만 후보가 직접 경쟁 후보의 신상을 공격하는 것을 좋지 못한 일로 여기는 분위기가 상대적으로 크다”고 말했다.

박윤식 교수는 “후보들 간의 공방은 주로 정책 공방”이라며 “상대를 흠집 내는 사적인 공격에 후보가 간여했다간 역효과가 난다는 인식이 팽배해 그 역할은 대개 언론에 맡긴다”고 말했다.

○ 후보 검증은 언론의 몫

미국에서 후보 검증은 대부분 언론이 수행한다. 그중엔 경쟁 후보 쪽에서 흘린 정보가 실마리가 되는 사례가 많다. 1988년 대선 당시 민주당 선두 주자였던 게리 하트 전 의원은 요트에서 여성 모델을 무릎에 앉힌 채 찍은 사진이 보도돼 낙마했다.

플레이크 사무총장은 “후보들이 선량한 이미지를 유지하기 위해 자신은 개입하지 않고 정교하게 만든 계획에 따라 언론에 정보를 흘린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2004년 대선 당시 조지 W 부시 후보의 병역 문제를 공격한 CBS방송의 간판 앵커(댄 래더)가 사퇴한 것처럼 부정확한 폭로엔 엄격한 책임이 따른다”고 말했다.

김동석 소장은 “연방선거, 더욱이 대선에서 후보 간에 물고 물리는 이전투구식 인신공격은 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대선에 나올 정도면 이미 기본 검증은 통과했기 때문이라는 것.

민병갑 교수는 오래전부터 정치노선과 사회적인 이슈가 대선에서 중심 어젠다를 차지하는 전통이 있다며 “재산은 축적 과정이 합법적이면 문제 삼지 않지만 부패는 문제가 된다. 하지만 대선 후보에게서 부패나 불법이 문제된 사례는 많지 않다”고 설명했다.

물론 경선이 막바지에 이르면 후보들이 직접 공격에 나서는 경우도 생긴다. 김 소장은 “2004년 민주당 경선 때 하워드 딘이 리처드 게파트 전 하원의원을 상대로 ‘노조에서 많은 후원금을 받았다’고 폭로해 본선 경쟁력을 우려한 당 지도부가 중재에 나선 적이 있다”며 “그렇지만 그런 일이 선거전을 압도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 ‘당당한 정책 줄서기’

지난달 5일 밤 뉴햄프셔 주 맨체스터에서 열린 공화당 후보 토론회. 행사가 끝나자마자 각 후보를 지지하는 정치인들이 자신의 이름이 적힌 팻말을 들고 기자실 옆방을 찾아와 언론 공략에 나섰다. 로버트 얼릭 메릴랜드 주지사는 기자들에게 루돌프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의 장점을 열심히 홍보했다.

정치인들은 “나는 이 후보를 지지한다”고 서슴없이 공언한다. 이곳저곳 눈치를 보며 줄서기를 하는 한국의 정치 풍토와는 다른 양상이다.

흑인 유권자가 대다수인 뉴욕 할렘에 지역구를 둔 찰스 랭걸 의원은 힐러리 의원 지지를 선언했다. ‘왜 오바마를 지지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힐러리가 더 미국을 잘 이끌 대통령이 될 수 있기 때문”이라는 대답에 묻는 기자가 머쓱해지고 말았다.

○ 투명한 자금 모집과 ‘돌풍의 길을 열어주는 예비경선’

후보들은 후원금 모금 실적을 놓고 매일 숫자 경쟁을 벌인다.

신기욱 교수는 “후원금 실적이 후보의 지지세를 가늠하는 척도가 된다는 점과 비록 조직과 자금에서 열세여도 아이오와, 뉴햄프셔 주 예비경선에서 돌풍을 일으키면 승리를 바라볼 수도 있는 게 미국 경선 레이스의 또 다른 특징”이라며 “다만 이번엔 다른 주들도 경선을 앞당기는 바람에 양상이 좀 바뀔 것”이라고 말했다.

가드너 뉴햄프셔 주 국무장관은 예비경선 전통을 이렇게 설명했다. “오래전 미국에서도 당 간부들이 후보자를 결정하던 때가 있었지만 뉴햄프셔 주는 평범한 시민들이 후보자를 결정하는 전통을 지켜왔다. 어떤 후보에게도 성역 없는 질문을 거침없이, 그러나 반드시 공평하게 던진다.”

○ 전투 중에도 유머는 필수

지난달 공화당 후보 토론회 때 진행자가 낙태 찬성론자인 줄리아니 전 뉴욕시장에게 부담스러운 질문을 던졌다.

“가톨릭 지도자 한 분이 귀하를 빌라도 총독에 비유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요?”

그때 마침 밖에서 벼락이 쳤다. 줄리아니 전 시장은 “가톨릭 학교에 다닌 사람이라면 뭔가 굉장히 무서운 일이 벌어지고 있다고 느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옆에 있던 존 매케인 상원의원과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 지사가 움찔하면서 번개를 피하려는 듯한 제스처를 취했다. 장내엔 웃음이 만발했다.

뉴욕=공종식 특파원 kong@donga.com

워싱턴=이기홍 특파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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