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대중문화 개방 9년 한국 속의 ‘日流’ 현주소

  • 입력 2007년 4월 24일 03시 05분


코멘트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서울 홍익대 앞 일본식 선술집 거리. 꼭 9년 전 일본 대중문화 개방 공론화 이후 일본 대중문화는 젊은 세대가 선호하는 새로운 문화장르로 자리 잡았다. 김미옥 기자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서울 홍익대 앞 일본식 선술집 거리. 꼭 9년 전 일본 대중문화 개방 공론화 이후 일본 대중문화는 젊은 세대가 선호하는 새로운 문화장르로 자리 잡았다. 김미옥 기자
《일본 아이돌그룹 아라시와 스마프를 좋아하는 회사원 민윤정(가명·32·여) 씨는 지난주 도쿄(東京)로 휴가를 다녀왔다. 민 씨는 인터넷으로 즐겨 본 후지TV 드라마 ‘친애하는 아버님’의 배경인 가쿠라자카(神樂坂)를 찾아 사진을 찍었다. 일본 잡지 ‘앙앙’에 나온 기사를 읽고 방문한 롯폰기(六本木) 미드타운에서는 옷과 액세서리, 음반 등을 구입했다. 민 씨는 사흘간 100만 원 넘게 썼지만 “꼭 사고 싶었던 물건이고 한국에선 더 비싸기 때문에 돈이 아깝진 않다”고 말했다.》

○ ‘한류’에 못지않은 ‘일류’

일본의 ‘한류(韓流)’라고 하면 ‘용사마’ 배용준을 환영하기 위해 나리타 공항에 5000명의 인파가 운집했던 장면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한국 젊은이들 사이에 퍼져 있는 ‘일류(日流)’도 이에 못지않다.

인터넷 포털 다음의 일본 대중문화 동호회 ‘일본TV’는 회원이 49만1000명에 이른다. 미국 대중문화 동호회 중 가장 큰 규모인 ‘할리우드의 아름다운 커플’(19만4000명)의 두 배가 넘고 일본 드라마를 볼 수 있는 ‘이-일본TV’에도 21만8000명이 가입해 있다.

연예인 팬 카페도 마찬가지다. 일본 가수 모닝구무스메나 하마사키 아유미, 마쓰모토 준의 팬 카페 회원 수는 세계적인 팝 스타들과 견줄 만하고 지난달 종영한 일본 TBS드라마 ‘꽃보다 남자2’는 매주 금요일 현지에서 방영이 끝나면 국내 인터넷 검색어 순위 1위에 오르기도 했다.

스마프나 긴키키즈 등 아이돌그룹이 일본에서 투어 콘서트를 하면 ‘엔타비’ ‘여행박사’ 등 일본 전문 여행사에 “공연 일정에 맞춰 달라”는 팬클럽의 상품 개설 문의가 잇따른다. 콘서트 티켓을 구하지 못한 국내 팬들이 인터넷 경매 사이트에서 한꺼번에 구매에 나서며 7000엔(약 7만 원) 안팎인 티켓 한 장 가격이 100만 원을 호가하기도 한다.

일본의 한류 팬은 주로 중장년층이지만 한국의 일류 팬은 젊은 세대가 중심을 이룬다. 한국관광공사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한국을 방문한 일본 관광객 연령대는 40세 이상(57.4%)이 40세 미만(42.6%)보다 많았다. 그러나 같은 기간 일본을 방문한 한국인 관광객은 40세 미만(54.7%)이 40세 이상(45.3%)보다 많았다.

○ 음성적 문화가 양지로

아카초칭(赤提燈·붉은색 종이로 만든 일본 전등)을 내건 일본식 선술집이 즐비한 거리에 일본 문자가 인쇄된 티셔츠를 입은 청년이 지나간다. 서울 홍익대 앞의 밤풍경이다. 이곳뿐만 아니라 젊은이들이 몰리는 신촌이나 이화여대 앞도 비슷하다.

동대문의 한 상가에는 일본 문자로 ‘울트라세븐’이라는 만화 캐릭터 이름이 적힌 티셔츠가 남성 의류 매장 앞 마네킹에 걸려 있다. 포털에서 일본식 패션을 의미하는 은어인 ‘니뽄필’을 검색하면 수많은 인터넷 쇼핑몰과 사진자료가 이어진다. 일본 대중문화 개방 이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던 모습이다.

1998년 4월 김대중 전 대통령은 문화관광부 업무보고에서 일본 대중문화 개방 문제를 해당 부처를 통해 처음으로 공론화시켰다. 이후 전문가들은 4차에 걸친 개방 조치가 음성적이었던 일본의 대중문화를 국내 젊은 세대가 선호하는 새로운 문화 장르로 바꾸어 놓았다고 설명한다.

문화평론가 김지룡 씨는 “한국에서 선악의 개념으로 받아들여졌던 일본 대중문화가 이제 취미생활의 하나로 자리 매김한 결과”라고 말했다.

○ 대중화는 성공했지만…

영화감독 이규형 씨는 일류의 인기 비결을 “선정적이지만 상업성과 재미를 갖췄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상업적으로 기대 이하의 결과다. 한국음반산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외국 음반 연간 판매량 순위 10위권에 일본 가수 음반은 한 장도 들지 못했다.

케이블과 위성방송의 일본드라마 중 ‘고쿠센’(시청률 1%대)을 제외한 대부분이 흥행에 실패했다.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 김용덕 연구원은 “일본의 화제작도 국내에서 시청률이 0.5%에 못 미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케이블 일본 문화채널 채널J의 서영민 편성제작팀장은 “마니아를 중심으로 인터넷에서 일본 드라마나 영화의 불법 내려받기 및 무단 게재가 일반화돼 상업적으로 성과를 내기 어렵다”고 밝혔다.

남원상 기자 surreal@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