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 아닌 ‘온전’…美-러 양극체제 부활하나

  • 입력 2007년 3월 12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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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를 녹일 듯한 뜨거운 여름과 경작지를 쩍쩍 갈라놓는 가뭄, 초원의 사막화, 격렬한 태풍을 동반한 호우, 해안도시의 수몰, 열대성 질병의 확산….

온난화가 변화시킬 미래는 단순히 이런 기상 재난에 그치지 않는다.

기후변화는 땅과 바다의 물리적 지도를 바꿀 뿐만 아니라 새로운 초강대국의 등장과 경제적 격변, 불평등의 확대, 영토 분쟁의 심화에 이르기까지 세계의 권력지도를 뒤바꿔 놓을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의 월간 애틀랜틱 4월호는 기후변화가 가져올 50∼100년 뒤 세계의 모습을 가늠하는 ‘가상의 큰 그림’을 커버스토리로 다뤘다. 필자는 시사잡지 뉴리퍼블릭의 선임편집자이자 브루킹스연구소 연구원인 그레그 이스터브룩 씨.

그는 “가뭄으로 마야제국이 멸망했듯이 역사적으로 기후변화는 문명의 흥망을 좌우했다”며 “21세기 기후변화는 새로운 수혜자와 피해자를 낳는 사회 경제적 격변을 가져오며 지구적 차원에서 돈과 권력의 재분배로 귀결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기후변화가 가져올 머지않은 미래의 세계를 그는 다음과 같이 그렸다.》

온난화가 지구촌 권력지도 바꾼다

○ 땅의 변화

기후변화는 세계의 토지 가치를 완전히 바꿀 것이다. 적도 근처의 저위도 지역은 너무 뜨거워 살기 어려운 지역이 되면서 경제적 가치도 떨어지는 반면 고위도의 대륙 지역은 살기 좋은 곳으로 변할 것이다.

인도네시아 멕시코 나이지리아는 도저히 살기 힘든 지역으로 바뀔 것이지만 얼음에 뒤덮여 있던 알래스카와 캐나다, 그린란드, 시베리아, 스칸디나비아는 훨씬 쾌적한 대지로 다시 태어날 것이다.

미국은 텍사스의 2배인 알래스카를 개발하고 캐나다와 그린란드, 스칸디나비아엔 떠들썩한 경제 붐이 일 것이다. 특히 광활한 시베리아 개척은 ‘제2의 신대륙 발견’이 돼 러시아는 다른 모든 나라의 혜택을 합한 것보다 많은 것을 얻게 될 것이다.

이에 따라 21세기 중반이면 미국과 러시아 두 슈퍼파워 간의 새로운 세력균형이라는 국제질서가 형성될 것이다. 20세기의 냉전(Cold War)이 아닌 ‘온전(Warming War)’의 시대가 오는 것이다.

불행한 일은 지구적 부(富)의 불평등이 더욱 심화된다는 점이다. 이미 낙후된 경제로 신음하고 있는 개발도상국들이 대부분 저위도 지역에 있어 기후변화의 피해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개도국의 여건이 악화돼 수많은 실업자와 난민을 낳을 것이다.

자원의 상대적 가치 변화는 역사적으로 전쟁을 불러일으켰다. 브라질이 아르헨티나를, 파키스탄이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할 가능성이 없지 않다. 덴마크는 자치권을 부여해 온 그린란드의 직접 관할권을 행사하려 들 것이다. 국제적 관할 아래에 있는 마지막 남은 자원의 보고인 남극대륙을 둘러싼 자원쟁탈 경쟁도 불꽃을 튀길 것으로 보인다.

○ 물의 변화

5대양은 그동안 이산화탄소를 흡수하는 기능을 발휘해 왔으나 대양이 흡수 능력을 잃어가면서 기후변화가 갑자기 속도를 낼 수 있다. 해안 자산의 투매와 고지대 자산의 대량 매집 사태가 아주 먼 미래의 일만은 아니다. 해수면이 3피트(91cm) 정도만 올라가도 방글라데시의 상당 부분이 잠길 것이고 네덜란드는 국가의 생존을 위협받을 것이다. 해수면이 더 올라가면 중국은 상하이나 홍콩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대양의 해류도 변화할 것이다. 특히 적도의 따뜻한 물을 운반해 온 북대서양 난류가 힘을 잃게 될 경우 유럽의 기온은 떨어지고 경제는 후퇴하기 될 것이다. 미국과 맞먹는 경제 규모를 지닌 유럽의 쇠퇴는 세계적 경기 침체를 초래할 수 있다.

북극해의 얼음이 녹으면서 저렴한 물류비용으로 인해 많은 화물선박이 북극해 항로를 이용하게 될 것이다. 그동안 교통량이 많던 남방 항로의 이용은 줄어들면서 싱가포르를 비롯한 저위도 지역의 항구는 쇠퇴할 수밖에 없다. 북극해에 묻혀 있는 잠재적 석유 자원을 둘러싸고 벌써부터 미국과 러시아, 캐나다, 노르웨이, 덴마크는 자국의 영토권을 주장하는 상황이다. 캐나다 해군이 북극해에서 군사훈련을 실시하는 것도 공공연한 비밀이다.

이미 물 부족 현상이 심각한 중동과 아프리카는 물론 중국의 지하수도 마르고 있다. 그동안 중국과 두바이의 급성장을 내다보던 투자자들은 그들의 성장이 계속될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 온실가스 규제 이유는?

이처럼 피해자 못지않은 수혜자도 있다면 기후변화가 그리 나쁜 것만은 아닐 텐데 왜 각국은 온실가스 배출을 규제해야 하는가.

이스터브룩 씨는 “지금 규제 조치를 취하는 비용이 나중에 세계를 재건하는 비용보다 싸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해안 도시를 포기하고 내륙에 다시 도시를 건설하는 것보다는 에너지 효율을 높여 온실가스 배출을 줄임으로써 해수면 상승을 피하는 게 낫다는 것이다. 그는 온실가스 배출 규제에 미온적인 미국에 충고를 잊지 않았다. “미국은 기후변화의 수혜자로 남겠지만 현재 누구도 감히 넘보기 어려운 ‘넘버원’ 자리를 놓고 다시 러시아와 경쟁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고 싶지 않다면 기후변화 방지에 적극 나서야 한다.”

이철희 기자 klim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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