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누스-멘추 등 노벨평화상 수상자들 잇단 대권 도전 왜?

  • 입력 2007년 2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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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방글라데시의 무하마드 유누스 그라민은행 총재는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된 직후 기자들에게 “정치할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았다. 방글라데시 총선을 앞두고 정치 혼란이 가중되던 시점이었다. 유누스 총재는 “부패한 정치를 바꿀 깨끗한 후보가 없는 게 걱정”이라면서도 “좋은 후보가 나오도록 도와줄 생각은 있지만 내가 정치할 계획은 없다”고 답했다. 4개월이 지난 이달 초 유누스 총재는 당초의 말과는 달리 정치 참여를 본격 선언했다. 이어 23일 ‘시민의 힘’이라고 이름 붙인 신당 창당을 공식 발표했다. 》

이에 앞서 1992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과테말라의 여성 인권운동가 리고베르타 멘추(48) 여사도 21일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노벨평화상과 정치에는 어떤 미묘한 함수관계가 있을까. 수상자들이 잇따라 현실 정치에 뛰어들면서 그 배경과 향후 결과에 관심이 쏠린다.

○ 민주화와 인권의 정치적 변신

노벨평화상 후보자들이 정치에 나선 것은 유누스 총재 등이 처음은 아니다.

폴란드의 레흐 바웬사 전 대통령은 1983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뒤 대선에 출마해 초대 직선 대통령에 당선됐다. 공산국가 폴란드에서 처음으로 노조를 결성해 민주화를 이끌어낸 바웬사 전 대통령은 노벨상 수상 후에도 계속된 정부 탄압에 맞서며 정치 지도자로 급부상했다.

동티모르 독립운동에 기여한 공로로 1996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라무스 오르타 당시 동티모르 독립혁명전선 대표는 이후 외교부 장관과 총리에 올랐다. 그가 전 세계를 상대로 벌인 외교활동은 2002년 동티모르 독립에 큰 힘이 됐다는 평가다.

이 밖에 남아프리카공화국 민주화를 위해 싸우다 오랜 기간 수감됐던 넬슨 만델라 남아공 전 대통령도 1993년 노벨상을 받았으며 이듬해에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 정치활동에서의 업적 인정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 미하일 고르바초프 옛 소련 대통령, 이츠하크 라빈 전 이스라엘 총리 등은 정치 활동에서의 공로를 인정받아 수상자로 결정됐다. 만델라 전 대통령 등이 노벨상의 ‘후광’으로 권력을 차지한 것과는 차이가 있다. 아직도 가택연금 상태인 미얀마의 아웅산 수치 여사도 야당 지도자로서의 정치 활동이 수상에 뒷받침이 됐다.

스타인 토네손 국제평화연구소 소장은 “카터 전 대통령(2002년 수상) 이후 노벨평화상은 정치인에게서 멀어지는 추세지만 노벨위원회가 국민의 지지를 받는 지도자를 수상자로 선정해 입지를 강화시키고자 하는 성향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 권좌에 오를 기회이자 부담

노벨평화상 수상자라는 타이틀이 주는 전국적 인지도는 이들을 정치권으로 이끄는 가장 큰 힘이다. 선거에서 유리한 위치에 설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일단 정권을 잡으면 원하는 방향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노벨평화상 수상 출신의 정치 후보자들은 남다른 열정 혹은 애국심이 ‘내 나라를 바꿔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연결된다는 공통점이 있다. 유누스 총재와 멘추 여사는 모두 조국이 심각한 시련에 직면해 있다는 점을 결단의 이유로 들었다.

방글라데시는 잇단 폭력 사태로 국가 비상사태가 선포되면서 총선이 무기한 연기됐다. 멘추 여사는 과거 원주민 학살에 앞장섰던 인물이 선거에 출마하자 ‘가해자와 피해자 간 맞대결’을 위해 도전장을 던졌다.

하지만 수상자들의 정치 참여는 당사자들에게 큰 부담이기도 하다. 정치 활동이 곧바로 가시적인 성과를 낸다는 보장이 없는 데다 혼탁한 정치판에 휘말려 그동안 쌓아온 좋은 이미지를 훼손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바웬사 전 대통령은 정권을 잡은 뒤 실업난 및 경제 악화 등으로 국민의 불만이 높아지면서 재선에 실패해 정계를 은퇴했다.

기존 정치 세력들 중에 노벨평화상 수상자들의 정치 참여를 못마땅하게 보는 분위기도 없지 않다. 방글라데시 민족주의자당(BNP)의 고위 당료인 무두드 아메드 씨는 “성공을 기원하지만 이런 모험을 하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은 기자 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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