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자살]IMF 직후 42%-2003년 경기침체 때 27%급증

  • 입력 2007년 2월 15일 02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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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 이후 지난 10년간 사회의 급격한 변동에 영향을 받아 일어나는 ‘아노미적’ 자살이 크게 늘어나고 있다.

자살의 원인이 개인의 문제에 국한되기보다는 사회적 문제로 인한 아노미적 자살의 급격한 증가가 한국을 자살률 1위의 나라로 끌어올린 것.

아노미적 자살은 사회집단에 대한 개인의 융화나 적응이 일시에 갑자기 차단되거나 붕괴되었을 때 발생하는 것으로 갑작스러운 경제적 파산, 사회적 규범이나 가치관의 붕괴 등이 원인이다.

이런 사실은 본보가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1996년부터 2005년까지 10년간 자살한 8만4048명의 직업과 나이, 교육 정도 등에 관한 자료를 통계청에서 받아 분석한 결과다.

전문가들은 “자살률 증가는 우리 사회 어딘가에 치유되지 않은 중증이 계속 악화되고 있다는 신호”라며 “정부는 물론 사회 구성원 모두가 자살을 남의 문제라기보다는 사회적 약자들이 던지는 비명으로 심각하게 인식하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 동두천시 인구와 맞먹는 10년간의 자살자

10년간의 자살자에 대한 통계분석 결과 스스로 세상을 등지는 이가 급등하는 두 번의 폭증기가 있었다.

‘1차 폭증기’는 1998년으로 전년도의 6022명보다 42.3%(2547명)나 급증했다. 1차 폭증기 이후 3년간 하향 곡선을 그리며 7000명 미만까지 떨어졌던 자살자는 2002년과 2003년 2년에 걸쳐 ‘2차 증폭기’를 맞았다. 첫해인 2002년에 전년 대비 24.5%(1698명)가 늘어난 데 이어 2003년에는 증가율이 더 높아져 2002년보다 26.7%(2301명)나 늘어났다.

2년에 걸친 폭증기는 2003년 자살자를 1만932명으로 늘리며 처음으로 1만 명을 넘어서게 하고 인구 10만 명당 자살자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1위인 24명으로 껑충 뛰게 했다.

이후 2004년과 2005년에도 전체 자살자는 해마다 최고치를 경신해 하루 평균 자살자는 33명까지 치솟았다.

결국 지난 10년간 경기 동두천시(8만4601명)나 전남 고흥군(8만4023명)의 인구와 맞먹는 사람이 목숨을 버렸다.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곽대경(사회학 박사) 교수는 “1998년은 국제통화기금(IMF) 관리 체제 여파가, 2002년과 2003년은 경기 침체와 양극화라는 사회적 변동이 자살에 영향을 미쳐 전형적인 아노미적 자살이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1997년까지 인구 10만 명당 자살률이 14.1명에 그치며 OECD 국가 중 하위권에 머물다 6년 만에 세계 최고의 ‘자살공화국’이 된 데에는 이처럼 두 차례의 큰 사회구조 변동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반대로 외환위기에서 벗어나며 상대적으로 경제적인 안정을 찾았던 1999년부터 2001년까지는 아노미적 자살이 줄어들며 자살률이 1998년 이전 수준에 근접한 6000명대로 떨어졌다.

○ 사회적 약자들의 자살 급증

자살률의 급격한 증가가 사회 구조의 변화와 관련이 깊다는 사실은 자살을 많이 하는 그룹의 변화에서도 나타났다.

1996년에는 30대, 농업·임업 및 어업 숙련 종사자가 큰 비중을 차지했으나 1, 2차 폭증기를 거치며 60대 이상 노인, 40대, 자영업자들로 바뀌었다.

이들 중 경제적 충격에 취약한 60대 이상 노인 자살자는 급속한 고령화사회 진입과 맞물리면서 10년 만에 4배가 넘는 폭발적 증가를 가져와 2005년에만 4359명이 자살했다.

반면 10대 자살자는 1996년 489명에서 2005년 279명으로 절반 가까이 줄어 전체 연령대 중 유일하게 자살자가 감소했다. 10대나 젊은 여성의 자살이 많을 거라는 일반적인 인식과는 다른 결과다.

이는 언론에 주로 보도되는 사건은 청소년의 충돌 자살이나 유명 여성 연예인의 자살이지만 현실에서는 자살자의 대부분이 평범한 사회적 약자이기 때문이다.

40대 자살자는 1996년 966명에서 10년 만에 2.4배가 늘어 2005년에는 2356명의 40대가 목숨을 끊었다. 경기 침체에 따른 실직 여파를 직접적으로 받으면서 2002년부터는 30대를 제치고 가장 많이 자살하는 연령대가 된 것.

경기에 민감한 자영업 역시 자살자가 1996년 468명에서 2005년 1016명으로 2.1배 증가했다. 직업 분류로 볼 때 가장 자살자가 많았던 직업군인 농업 임업 어업 숙련 종사자가 2003년 이후 자영업자로 바뀐 것.

이혼하거나 사별한 뒤 자살하는 사람도 지속적으로 늘어 2005년 전체 자살자에서 이들이 차지하는 비율은 11%와 15%로 1996년보다 각각 5%씩 늘었다. 특히 1차 폭증기에는 자살자 중 이혼자가 전년도에 비해 68%나 급증했다.

서울대 임현진(사회학과) 교수는 “양극화와 생활고, 거기에 이혼까지 늘면서 사람들이 혼자 생활하는 것을 이기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며 “자살은 개인적 행위지만 그 원인은 개인보다 사회구조나 사회 분위기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서강대 전상진(사회학과) 교수는 “경제적인 구조가 많이 변화하고 있고 그런 가운데 사회 구성원 개개인이 이에 대비할 시간도 없이 상황에 노출되다 보니 극단적 선택이 늘어난 것”이라고 분석했다.

전화접촉… 가정방문… 정부가 ‘자살 지킴이’

■ 외국의 자살예방 대책

우리보다 먼저 자살자 수 증가 문제를 경험한 선진국들은 어떤 방법으로 자살자 수를 줄였을까.

이들의 공통점으로는 정부가 직접 나서서 자살을 관리했다는 게 꼽힌다.

핵가족이 많은 미국은 노인자살예방프로그램이 잘돼 있다. 많은 지역사회에서 노인자살예방센터나 노인전용 상담 서비스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이곳의 전문 상담원들은 계획표에 따라 지역 내 노인과 전화 접촉을 하고 자살 위험이 크다고 판단되면 가정방문을 한다. 또 노인과 자주 접하는 의사 약사 은행원 경찰관 등이 자살 위험도가 높은 노인을 전문기관에 의뢰하는 ‘자살 문지기’ 역할을 하는 경우도 있다.

핀란드는 인구 10만 명당 자살 인구가 1950년 15.5명을 시작으로 1990년 30.3명까지 지속적으로 증가했을 정도로 자살자가 많았다. 하지만 1993년부터 도입한 ‘자살예방국가전략’으로 자살률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있다. 2004년에는 20.3명까지 감소했다.

이 전략은 보건복지부 국립보건연구소 의료기관 간에 자살을 시도한 사람에 대한 진단 치료 추적 관찰과 관련된 단일 시스템을 구축하는 게 골자이다.

헝가리는 국가 차원의 자살 관리가 시작된 이후 자살률이 줄어들고 있는 대표적인 나라. 1980년대에는 인구 10만 명당 자살 인구가 45명에 육박했을 정도로 ‘자살 천국’이었다.

그러나 2002년부터 미국의 ‘자살예방재단’과 연계해 국가 차원의 자살예방프로젝트를 수행한 결과 2003년 27.7명, 2005년 22.6명 등으로 자살률이 떨어지고 있다.

국립서울병원 남윤영(정신과 전문의) 기획홍보팀장은 “한국의 자살관리 대책은 선언형 대책이 대부분”이라며 “정부가 직접 나서서 체계적이면서도 종합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별취재팀

팀장=이현두 기자 ruchi@donga.com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임우선 기자 imsun@donga.com

우정열 기자 passion@donga.com

한상준 기자 alwaysj@donga.com

권혜진 기자 hjkwon@donga.com

- 노인-40대-자영업자 점점 벼랑 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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