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살당한 러시아 망명스파이 “러 정보기관이 날 감시”

  • 입력 2006년 11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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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런던에서 숨진 러시아 연방보안국(FSB) 전직 요원 알렉산데르 리트비넨코(사진) 씨는 방사능 물질 ‘폴로늄 210’에 희생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또 숨지기 전 “런던에 체류하는 러시아 정보기관 고위 인사가 나를 감시해 왔다”고 주장했다.

영국 공영방송 BBC는 “23일 사망한 리트비넨코 씨의 소변에서 폴로늄 210이 기준치 이상 검출됐다”고 보도했다. 폴로늄 210이 자연 상태에서 방출하는 방사능은 인체의 피부를 뚫지 못하는 수준이지만 사람이 복용해 인체 내부에 들어갔을 때는 강력한 독성 물질로 변해 장기 파열과 백혈구 파괴를 일으킨다.

원자력 전문가들은 이 물질이 입자가속기나 원자로에서 추출됐을 것으로 보고 있으며 동유럽 암시장에서 밀거래됐을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한편 일요판 신문인 선데이타임스 인터넷판은 “그가 숨지기 전 자신을 감시하는 인물로 ‘빅토르 키로프’를 지목했다”고 전했다.

이 신문은 “런던의 러시아 대사관에는 지난해 10월까지 아나톨리 V 키로프라는 인물이 외교관으로 등록돼 있었다”며 “이 사건이 국가기관과 관련됐다는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서유럽과 러시아는 사건의 배후를 놓고 연일 설전을 벌이고 있다.

서유럽 측은 이번 사건에 러시아의 크렘린과 FSB가 개입했을 것이라는 의혹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리트비넨코 씨가 러시아의 탄압을 피해 영국으로 망명한 스파이인 데다 그가 러시아의 체첸 정책을 비판한 여기자 안나 폴릿콥스카야 씨의 사망 사건과 관련된 문서를 전달받았기 때문.

러시아 측은 연루 사실을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일부 러시아 정치인은 “영국으로 망명한 러시아 재벌 보리스 베레좁스키 씨의 소행일 수 있다”며 의혹 떠넘기기에 나섰다.

공교롭게도 이번 사건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집권 과정 및 러시아의 내부 갈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푸틴 대통령은 러시아 남부 체첸 반군을 성공적으로 진압한 뒤 대통령에 당선됐으며 집권 후에는 보리스 옐친 전 대통령과 가까웠던 크렘린 구파를 제거했다.

이 과정에서 러시아 국영 기업을 헐값에 사들여 막대한 부를 축적한 일부 재벌과 관료는 푸틴 대통령에게 반기를 들었다가 감옥이나 해외 망명을 선택해야만 했다. 베레좁스키와 리트비넨코 씨도 2000년 영국으로 망명했다. 폴릿콥스카야 씨도 체첸 문제를 깊이 파고들다가 괴한이 쏜 총에 맞았다.

러시아가 영국의 수사 결과를 수용할지도 의문이다. 러시아 반정부 망명객에 대한 인도 문제를 놓고 두 나라는 불편한 관계를 지속하고 있다.

모스크바=정위용 특파원 viyon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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